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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유권자의 확증편향, 결국 대가 치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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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호원 경북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

이호원 경북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

넷플릭스를 통해 2021년 소개된 영화 ‘돈 룩업(Don’t Look Up)’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쟁쟁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에서 천문학자인 민디 박사는 거대 혜성을 발견하고 이 혜성의 궤도가 지구 궤도와 겹치게 될 것으로 계산한다. 지구와 혜성의 충돌로 발생하게 될 에너지 방출로 지구의 모든 생물이 전멸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학계의 수학적 검증을 모두 끝낸 뒤 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고 공표한다.

선거철마다 음모론·양비론 활개
불필요한 사회 분열과 갈등 초래
사실 확인하는 과학적 사고 필요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그러나 정치권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산업계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 언론과 종교계까지 가세하면서 민디 박사를 음모론자로 몰아갔다. 혜성 충돌을 회피할 기회가 두 차례 있었지만, 어이없는 정치적 판단과 산업계의 탐욕으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린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대중은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의 존재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미디어가 만들어낸 혼란스러운 정보로 여론이 분열된다. 결국 지구는 혜성과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

대중은 왜 정보를 왜곡·편취해 받아들이고 싶은 사실만 받아들일까.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진 생각이나 신념을 강화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모으거나, 어떤 것을 설명·주장할 때 편향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 ‘내 논에 물 대기(我田引水)’ 같은 것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정보 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지 편향의 하나로 확증편향을 설명한다. 후방 내측 전두엽 피질은 확증편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뇌는 자신이 믿는 기존 정보에 부합하는 정보의 강도는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강도를 약화해 기존 정보의 강도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근거 없는 과신을 갖게 한다.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다른 사실을 불신하며, 과학적 사실에 반해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려 하기도 한다. 과학 탐구에서도 확증편향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2002~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경우 한국에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자 일각에서는 이것이 한국의 전통음식인 김치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과학자들조차 이런 주장에 동참하는 현상을 보였다. 심지어 ‘조류 인플루엔자(AI)’나 신종플루도 막을 수 있다는 무책임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실험을 통해 김치는 바이러스 감염증의 예방이나 치료에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민족주의에 의한 확증편향이 정상적인 과학 활동을 가로막았다.

선거에서도 확증편향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정하거나 양비론을 펼치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태에서는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정책에 의한 후보자 선택보다는 비방과 흑색선전, 허위사실에 근거한 부정 선거운동이 횡행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사실과 정책을 제시해도 유권자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낙선하면 확증편향적 태도의 영향으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거 자체가 잘못됐다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선거 관리 절차의 하자나 의혹을 짚어내고 바로잡는 것은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객관적 근거 없이 불법 가능성이나 막연한 의혹만 제기하는 것은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는 행위다. 이 경우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확증편향적 상황일수록 눈으로 보이는 사건이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거나, 직접 실험으로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객관적 사실이 확인되면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오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총선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 주의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호원 경북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