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오후 3시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사거리 인근 도로를 건너던 84세 여성 A씨가 달려오는 승합차에 치여 사망했다. 폭 6m가량의 편도 3차로를 무단횡단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인근 주민인 A씨는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중 횡단보도를 찾지 못해 찻길을 건넜다.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는 약 150m 떨어져 있었다. 사건을 담당한 동대문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몸이 불편한 노인이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는 것도 여의치 않아 최단거리로 횡단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북구 미아역 뒤편 6차로도 서울에서 노인 무단횡단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 중 하나다. 지난달 28일 밤 이곳을 무단횡단한 62세 남성 B씨가 승용차에 치여 사흘 뒤 숨졌다. 인근 병원의 입원 환자였던 B씨는 요깃거리를 사러 가다가 봉변을 당했다. 경찰은 운전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사건 당시 차량의 속도를 분석하는 등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보행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전국에서 933명이었다. 이 중 만 65세 이상 노인은 모두 558명(60%)에 달했다. 또 노인 사망자 중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노인이 191명(34%)이다. 이틀에 한 명꼴로 노인들이 무단횡단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문제는 ‘보행자 우선’이란 안전운전 원칙이 확산하면서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노인의 비율이 해마다 높아진다는 점이다. 2008년 전체 보행 중 사망자(2137명)에서 노인 사망자 903명(42%)이다가 2015년 1795명 중 909명(51%), 2020년 1093명 중 628명(57%)로 노인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을 지정할 수 있다. 실버존에선 어린이 보호구역처럼 차량 속도를 30km 이하로 낮춰야 하고 횡단보도 보행 시간도 늘릴 수 있다. 다만 노인복지센터나 요양시설 등 노인복지시설 주변 도로 위주로 지정하고 있어 무단횡단 사고를 줄이는 데 효용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내 노인보호구역은 184곳인데, 성북구 장위시장과 종로구 락희거리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노인복지센터와 요양원 인근 도로다.
현행법상 노인이 자주 왕래하는 곳을 실버존으로 지정하려면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도 ‘2023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 수립 및 추진 계획’에서 “노인 보호구역 지정기준을 복지시설 중심에서 노인 보행자가 많은 장소(전통시장 등)까지 확대하도록 참고 조례안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도시에선 과태료 2배가 되고 주차난이 가중되는 데 따른 불편과 민원 발생을 이유로 전통시장과 인근 주민들이 반대해 노인보호구역을 확대하긴 쉽지 않다고 한다.
대신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선 지난해 보행로-도로 사이 방호 울타리(총 2607m)와 ‘무단횡단 금지’ 팻말이 붙은 간이 중앙분리대(총 4035m)를 새로 설치하는 등 무단횡단 방지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자치구와 경찰서로부터 의견을 받아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다”며 “간이 중앙분리대는 미관상 안 좋다는 지적과 교체의 어려움 때문에 방호 울타리 설치로 바꾸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경찰도 ‘무단횡단 금지’라고 적힌 효자손을 제작, 배포하는 등 예방 교육에 힘쓰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달 29일 한국교통안전공단과 대한노인회, 교경협의회와 함께 노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강북서 교통과 관계자는 “매달 경로당, 교회, 동사무소 등 노인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무단횡단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강연을 하고 효자손을 나눠드리는 등 홍보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노인분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근처나 중앙분리대가 없는 일부 큰 도로들에서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노인 친화적인 도로 환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제시간에 건널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횡단보도 간 간격까지 멀면 무단횡단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거보다 육교나 지하차도가 많이 줄고 보행자 편의가 개선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노인들과 휠체어 장애인에게 도시는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환경”이라며 “노인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인근이나 사고 다발 지점엔 횡단보도를 추가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