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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안보 가치에 영향 주나…심상찮은 ‘반도체 재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에디터 노트.

에디터 노트.

어떤 일이든 페이스를 놓치면 좋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이 이런 형국입니다. 반도체 산업이 미국에서 일어나 유럽을 거쳐 1980년대 일본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요즘 절정기를 치닫는 봄꽃들처럼 일본은 오래 못가 미국의 견제를 받고 주도권을 잃었습니다.

그 사이 이병철이라는 백 년 앞을 내다보는 세기적 기업인이 나타나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고 한국은 기회를 잡아 2010년대 반도체 독주 시대를 열었습니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었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를 놓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중 기술경쟁과 인공지능(AI)이 반도체 산업의 판을 바꾸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한국의 반도체 패권은 미국·일본·중국·유럽 등 사방에서 공략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받자 반도체 직접 생산체제로 돌아섰습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모두 쏟아붓고 중국에 질새라 국가 산업정책을 도입해 반도체법을 만들고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미국 땅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엔비디아의 위력이 커지고 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도 보조금을 받고 생산 능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깨어났습니다.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전 국토가 반도체 생산 기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규제에 발목잡힌 한국과는 딴판입니다. 대만의 파운드리와 중국의 범용 반도체 위력도 날로 커집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새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 봄날이 왔다지만 낙관만 할 수 없습니다. 강대국 의도대로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곧 안보 자산인 시대인만큼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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