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을 믿습니까…'그 태초'에 애덤 스미스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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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상)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1989) 토드 부크홀츠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30주년 개정 증보판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30주년 개정 증보판

세줄 요약

-(경제학의) 태초에 애덤 스미스가 있었다. 앨프리드 마셜과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사도다.
-마셜의 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학파(케인지언)를 정립했고, 밀턴 프리드먼은 작은 정부와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하는 통화주의를 주창했다.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합리적기대가설, 게임이론 등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경제학도들 머리카락도 빠지고 있다.

왜 경제학자의 예측은 늘 틀리나

그해 봄, 캠퍼스에 가득한 샛노란 개나리와 학교 정문에서부터 흘러든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경제학과에 입학해 맞이한 첫 경제원론 수업은 '전대갈은 물러가라' '직선제 쟁취' 같은 구호를 배경으로 조금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시작했다. 강단에 선 이현재 교수는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운을 뗐다. 37년 전인 1987년 3월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했던 스무살 애송이는 어렵고 중요한 얘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자라는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면 결국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고, 어떤 선택이건 결국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과 손해를 보고 밀려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학 졸업 후 30년을 경제 담당 기자로 일했지만 지금도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는 잘 모른다. 코로나 사태 이후 누군가는 금리를 올리라고 하고, 누군가는 내리라고 한다. 누군가는 국채를 더 찍어서라도 시민들에게 지원금을 주자고 하고, 누군가는 세금을 줄여서 소비를 촉진하자고 한다. 수십, 수백가지 제언이 나오지만 무슨 맥락인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아무말 대잔치'를 듣다 보면 더더욱 혼란스럽다. 부크홀츠의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경제학자들이, 나아가 정치인과 정책 담당자들이 중구난방의 대책을 내놓는 이유를 경제사와 경제학설사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

보이지 않는 손을 믿습니까

18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국가가 가진 귀금속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중상주의가 판을 쳤다. 경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더 많은 금, 은을 모아 강력한 군대와 관료를 키우는 것이 국가의 목표였다. 이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케네 등은 오직 토지만이 유효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중농주의를 펼쳤다. 공업은 투입한 만큼의 가치를 산출할 뿐이고, 상업은 이미 생산한 가치를 재분배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정부와 상인의 담합으로 농민이 피해를 보는 중상주의의 폐단을 지적했지만,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성장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1723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751년 글래스고대 논리학, 도덕철학 교수가 된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 중농주의를 주로 섭렵한 뒤 1776년 '국부론'을 내놨다. 그는 국가의 부는 보유한 귀금속의 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생산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합으로 평가된다고 봤다.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국부는 외환보유고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이라고 얘기한 셈이다.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분업을 통한 자유무역이 필수다. 정부나 길드의 규제가 없어도 이익을 얻기 위한 개별 생산자의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산량과 가격이 정해진다.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자유시장경제가 굴러간다.

2020년까지 사용한 영국 20파운드 지폐의 뒷면. 애덤 스미스의 얼굴과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과를 설명하는 사례로 들었던 핀 공장의 분업 생산과정이 새겨져있다.

2020년까지 사용한 영국 20파운드 지폐의 뒷면. 애덤 스미스의 얼굴과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과를 설명하는 사례로 들었던 핀 공장의 분업 생산과정이 새겨져있다.

스미스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경제학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1903년 케임브리지 대학이 경제학과를 윤리학과에서 분리할 때까지 학자들은 경제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간주했다. 하지만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유무역, 시장경제 등 현대 경제사상의 토대를 모두 담고 있는 바이블이다. 인구 폭발의 위험성을 지적한 원조 '닥터 둠' 토마스 맬서스, 비교우위를 통한 자유무역론을 완성한 데이비드 리카도 등이 스미스의 뒤를 받쳤다.

마셜의 차가운 머리, 마르크스의 뜨거운 가슴 

1842년 영국에서 태어난 앨프리드 마셜은 한계이론을 집대성해 현대 미시경제학의 토대를 닦았다. 현대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학파는 마셜의 직계 후손이다. 경제학도들이 흔히 되뇌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그런데 현대 경제학도들이 미분 방정식으로 재구성한 한계효용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머리가 뜨거워지는 문제가 있긴 하다).

반면 '격분한 현자' 카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당시의 폐해를 눈으로 보면서 자유방임이 이어질 경우 계급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내놨다. 그의 저서 『자본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함께 나중에 자세히 들여다보자. 변증법적 유물론(유물사관), 노동가치설, 이윤율 하락의 법칙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대적자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파 경제학의 어두운 부분을 가장 잘 분석했다는 점에서 '최후의 고전파 경제학자'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TMI

이현재 교수는 서울대 총장(1983년~85년), 국무총리(1988년)를 역임한 경제학계의 원로다. 올해 95세로 생존 중인 전임 국무총리 가운데 최고령이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세계적인 헤지펀드 타이거의 펀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권위 있는 경제학자라 하기는 어렵지만,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개론을 가르칠 때 학생이 직접 뽑는 명강의자에게 주는 '앨런 영' 상을 받을 정도로 입담과 필력을 갖췄다. 경력 때문에 자유주의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책에서 직접 이런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1989년 초판을 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는 애덤 스미스 이후 300년간의 경제학사를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다. 경제학 책이라면 의례 떠오르는 수식과 그래프 대신 다양한 경제 현상을 예로 들어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는 틀을 제시한다. 1994년 첫 한국어판이 나온 이후 정부와 주요 대학의 추천도서로 꼽혔고, 2023년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의 코로나 사태까지 담은 개정판이 나왔다. 첫 번역판은 388쪽이었는데 최신 개정판은 748쪽에 달한다.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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