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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방망이도 강한 '철인 47호'…다시 태어나도 포수 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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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20면

KBO리그 최다출장 기록 강민호 

강민호 선수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전시돼 있는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강민호 선수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전시돼 있는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야구의 포수를 흔히 ‘안방마님’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마님이 아니라 ‘마당쇠’에 가깝다. 포수는 마스크와 육중한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 내내 쭈그려 앉아 투수의 공을 받는다. 타자를 공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공 배합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투수와 사인을 교환한다. 주자가 나가면 견제에 신경 쓰고 도루를 시도하면 공을 던져 잡아내야 한다. 위기 때는 수비수의 위치도 정해준다. 파울볼에 맞고, 때로는 타자가 휘두른 방망이에 맞고,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와 충돌해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갖고 있는 포수는 많은 경기에 출장하기 어렵고, 타격 성적도 다른 야수에 비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 강민호(38)는 이 모든 상식을 뒤집었다. 그는 지난 3월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5번 타자 포수로 출전해 통산 2238번째 경기를 뛰었다. 박용택(은퇴)이 갖고 있던 KBO리그 최다출장(2237경기) 기록을 깬 것이다. 게다가 강민호는 이만수-박경완의 대를 잇는 대표적인 ‘공격형 포수’다. 통산 안타·타점·홈런 등 포수 관련 공격 기록에는 그가 맨 윗자리에 있다.

KBO리그 최다출장 기록을 갖고 있던 박용택(오른쪽)이 자신의 기록을 깬 강민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사진 삼성라이온즈]

KBO리그 최다출장 기록을 갖고 있던 박용택(오른쪽)이 자신의 기록을 깬 강민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사진 삼성라이온즈]

강민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메이저리그 포수 최다출장 기록(이반 로드리게스 2543경기)도 강민호가 300경기 정도 더 나가면 깬다.

지난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강민호 선수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철인 47호’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47은 그가 20년째 달고 있는 등번호다. 팀이 6연패에 빠져 있어서 강민호는 자신이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래도 특유의 넉살과 긍정 마인드는 여전했다.

어려울 때 피하기보다 부딪치는 성격

최다출장 기록을 세운 경기에서 남다른 느낌이 있었나요.
“솔직히 그 경기가 다가올 때는 좀 많이 설렜는데 막상 당일에는 그런 느낌은 별로 안 들었고 그냥 제 야구인생에 지나가는 하루라는 생각이 들 만큼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왜 포수를 했나요.
“저희 초등학교(제주 신광초)에 야구팀이 있었는데 그때 제주도는 야구 불모지여서 대회가 있으면 4,5,6학년이 다 같이 응원을 갔어요. 가서 보니 야구가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서 동네야구부터 시작했죠. 포수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하고 싶었는데 우리 팀에 포수가 있어서 3루를 봤고, 중학교에 가서 포수를 하겠다고 강하게 요청해서 마스크를 쓰게 됐죠.”
포수가 어떤 매력이 있던가요.
“어린 마음에 장비도 좀 포스가 있어 보이고, 야수들 수비 위치 등을 지시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나 봐요. 포수가 힘든 포지션이지만 후회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프로 와서 어린 나이에 경기를 뛰면서 포수의 매력을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포수는 경기를 이기고 졌을 때 희로애락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더 큰 것 같습니다. 책임이 큰 포지션이다 보니 결과에 대한 반응도 더 강하게 나타나지 않나 싶어요.”
삼성 라이온즈에서 7시즌째 뛰고 있는 강민호. [사진 삼성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에서 7시즌째 뛰고 있는 강민호. [사진 삼성라이온즈]

대기록 달성의 비결이라면.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서 큰 부상 없이 경기를 뛸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크고요. 비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몸 관리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썼습니다. 저희는 1년 동안 장기 레이스를 하기 때문에 오늘 웨이트를 한다고 내일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운동량이 누적돼야 시즌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볼 배합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서 타격이 좋은 건가요.
“그런 점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 포수가 어떤 카운트에서 어떤 승부구를 요구하더라 하는 게 있거든요. 경기를 많이 뛰다 보니 그런 데이터가 쌓이면서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몸 관리 못지않게 멘털 관리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1년 시즌을 보내면서 수없이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안될 때는 숨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피하는 성격이 아니라 맞부딪치는 걸 좋아해요. 타격 컨디션이 안 좋으면 경기를 나가서 극복을 해야 하죠. ‘못하더라도 경기에 나가서 못하자. 언젠가는 좋아질 거다’는 긍정적인 멘털을 갖고 있습니다.”

강민호는 포철중·고를 졸업하고 2004년 전체 17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 해 9월에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 해부터 주전으로 나섰다. 14년간 롯데에서 뛴 뒤 FA(자유계약선수)가 된 2018년에 4년 80억원을 보장받고 삼성으로 옮겼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강민호가 있는 동안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언제까지 뛰겠다는 한계 정하지 않아

강민호 통산 기록과 순위

강민호 통산 기록과 순위

챔피언 반지는커녕 한국시리즈에도 못 나가 봤는데요.
“아쉬움이 굉장히 크죠. 제 야구인생에 옥에 티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되고, 목표가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할 수 있다고 봅니다. 팀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꼴찌가 우승할 수도 있는 게 스포츠의 매력 아닙니까.”
부산 팬들은 강민호가 영원히 롯데맨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요.
“부산 팬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저도 남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어요. 그렇지만 FA가 됐을 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팀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남고 싶었지만 남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남고 싶은 선수가 팀을 떠나야 한다면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제주도 출신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유일한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자부심이 크고 부모님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제가 태어난 제주도를 알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시고 지금도 제주시 노형동에 살고 계십니다.”
올해 도입된 ABS(자동볼판정 시스템)에는 적응이 됐나요.
“시즌 초반이라 모든 구장을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구장마다 조금씩 스트라이크존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이 하는 스포츠 안에 기계가 들어와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데 사람이 기계에 종속되는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게 대세고 팬들이 원한다면 거기에 맞춰 가야죠.”
피치 클락(투구시간 제한. 어기면 페널티)에 대한 생각은.
“내년부터 본격 시행한다는데 선수들도 올해 좀 적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미국과 달리 주자가 나갔을 때 포수가 수비 위치 등을 정해주고 사인을 내고 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작전코치의 지시도 받아야 하고요. 주자가 없을 때는 피치 클락을 그대로 시행하는 게 문제가 없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 좀 다르게 적용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MLB 이반 로드리게스의 포수 최다출장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깨려고 노력해야죠. 이번 기록도 해야 되겠다고 한 게 아니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30대 초반까지도 제가 당연히 주전 포수라고 생각했는데 2년 전부터 그걸 버렸습니다. 후배들과 경쟁에서 안 처져야 경기를 뛸 수 있으니까요. 언제까지 뛰겠다고 한계선을 정하진 않았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을 국가대표 포수와 최다출장 기록을 깰 선수를 꼽는다면.
“국가대표 포수로는 NC의 김형준(24) 선수가 앞으로 야구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최다 출장도 NC에 있는 손아섭(36) 선수가 유력합니다. 아섭이와는 롯데에서 워낙 친했기 때문에 제 기록을 깨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철인 47호’라는 별명을 드릴게요.
“아, 좋습니다. 등번호 47번은 프로 2년차부터 달았어요. 처음엔 40번이었는데 행운의 숫자 7을 갖고 싶었거든요. 마침 47번 선배가 타 구단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그 번호를 갖고 올 수 있었습니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최다출장을 달성하는 데 많은 분들한테 도움을 받았습니다. 좋은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좋은 트레이너들이 몸 관리를 잘해주셨습니다. 아이 셋 키우면서 제가 야구에만 집중하게 도와준 아내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삼성이 지금은 성적이 안 좋지만 아직 초반이고 언제든지 반등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를 할 건가요.
“당연합니다. 포수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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