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황제후계자지명, 당사자는 "됐거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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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하모닉의 '황제' 로린 마젤(Maazel.76)이 이례적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직접 지명했지만, 정작 당사자로부터는 거절당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고 조선일보가 1일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욕 필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마젤은 지난 28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차기 지휘자는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64)이라고 적은 편지를 오케스트라 이사회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바렌보임이 폭넓은 레퍼토리, 경영 능력, 믿을 만한 지휘 테크닉, 100여 명에 이르는 단원들을 통솔할 만한 성숙함을 모두 갖췄다고 말했다.

연봉 약 200만달러(18억여 원)로 알려져 있는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는 지구촌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자리 중의 하나.

통상 이사회가 결정하는 지휘자 선임 문제에 대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직접 나서서 언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마젤은 "그들(이사회)이 결정을 못 내린다면 내가 먼저 제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오케스트라와 강하게 결속돼 있으며, 내 딸을 결혼시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마젤의 임기는 2009년까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차기 음악감독을 섭외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바렌보임은 마젤의 제안에 대해 "미국으로 돌아가 상임 자리를 맡는 건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며 사양했다. 1991년부터 지난 6월까지 15년간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었던 바렌보임은 현재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동료가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나를 후임으로 추천해준 건 무척이나 기쁘고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정식으로 제안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가부(可否)를 밝혀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렌보임은 세계적 석학이었던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Said. 1935 ̄2003)와 함께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대계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가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어 서로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음악인을 절반씩 모아서 만든 오케스트라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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