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공시가격 널뛰기에 빌라는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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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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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뒤에서 울상 짓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빌라라고 하는 다세대 주택을 보유하고 전세 세입자를 들인 집주인들이다. 세금에서 아낀 돈은 수만원에 불과하지만 경우에 따라 수천만원을 토해 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세입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전세 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빌라 임대 시장과 주택 공시가격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모양이나 면적·구조 등이 천차만별이다. 부동산 업계 용어로는 개별성이 강하다고 표현한다. 빌라는 매매도 활발하지 않다. 그러니 적정한 실거래가를 따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값이 전셋값 아래로 내려간 ‘깡통전세’가 속출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주택 재산세는 찔끔 내리겠지만
전세보증 축소에 집주인도 불만
서민 ‘주거 사다리’ 훼손 말아야

이럴 때 세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데 HUG는 지난해 5월 전세보증 가입 한도를 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낮췄다. 예컨대 공시가격 1억원인 빌라가 있다면 1억2600만원까지만 전세 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전에는 공시가격의 150%가 한도였다. 이런 기준 변경만으로도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한도가 대폭 줄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를 매길 때 기준이 된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내리면 세금도 내려간다. 빌라 집주인이라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공시가격 인하로 전세보증 한도가 줄어든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 18.63% 내렸다. 2022년(17.2% 인상)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국토부는 올해 공시가격을 전국 평균 1.52%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올해와 지난해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안심할 수 없다. 통상 전세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진다. 2022년 공시가격이 급등했을 때 이뤄진 전세 계약의 만기가 올해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빌라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 가입을 조건으로 세입자를 들이려면 2년 전보다 훨씬 싸게 내놔야 한다. 이런 집에선 기존 세입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현실에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다음에 그 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게 잘 안 되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곤란해진다. 전세보증 한도 축소가 집주인과 세입자의 분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일차적인 잘못은 2022년과 그 이전에 공시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문재인 정부에 있다. 사실 정권 초기엔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근무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보유세 강화에 신중했다. 최대한 덜 시끄럽게, 이른바 ‘로우키’로 공시가격의 점진적 인상을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점진적 인상’이었던 공시가격의 정책 목표는 어느 순간 ‘대폭 인상’으로 변했다. 국토부가 2020년 1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주택의 유형이나 가격대와 관계없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게 해주자는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수현 전 실장도 “사실상 전 국민의 부동산 세금을 올리겠다고 선포한 셈”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공시가격을 대폭 내린 윤석열 정부에게 무조건 좋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필요하지만, 너무 한꺼번에 되돌리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현재 빌라 시장에선 “사지도, 살지도, 짓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빌라는 매매도 잘 안 되고, 전세도 잘 안 나가고, 새로 짓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모든 국민이 아파트에 살 수 없다면 빌라는 꼭 필요한 주택 유형이다. 다세대 주택으로만 따져도 서울에 83만 가구, 전국에는 229만 가구가 있다. 법적으로 단독주택으로 분류하는 다가구 주택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특히 가진 돈이 적은 서민층이나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에게 빌라는 그동안 ‘주거 사다리’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과거 전세 위주였던 빌라 임대 시장은 월세 위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신규 임대 거래에서 월세의 비중은 70%를 넘었다. 월세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월세가 갑자기 늘면 집주인은 집주인 대로, 세입자는 세입자 대로 혼란을 겪게 된다. 서민 주거 사다리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걸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