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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웃기에는 ‘사실’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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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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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개봉한 축구영화 ‘넥스트 골 윈즈’는 2014 브라질월드컵 오세아니아 1차 예선에 나선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최하위 미국령 사모아 얘기다. 미국령 사모아는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통가를 2-1로 꺾고 자국 축구 사상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첫 승리를 거뒀다. 그 전까지 17년간 30전 전패를 당한 터였다. 30패 중에는 2002 한일월드컵 오세아니아 예선 호주전의 0-31 패배가 있다. 역대 A매치 최다골 차 경기다.

2002 월드컵 예선을 오세아니아에서 치른 호주가 왜 지금은 아시아 예선에 나올까. 호주는 2002 월드컵 오세아니아 예선에서 6전 전승을 거뒀다. 당시 오세아니아의 월드컵 본선 쿼터는 0.5장. 1위라도 남미 5위와 플레이오프(PO)를 치러야 했다. 호주는 PO에서 우루과이에 졌다. 그 직후 호주는 대륙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시아로 갈아탄 호주는 2006 독일월드컵부터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6회 연속 본선에 올랐다.

태국과 1-1로 비긴 지난달 21일 월드컵 2차 예선 경기 직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관중석 현수막 문구가 팬심이다. [뉴스1]

태국과 1-1로 비긴 지난달 21일 월드컵 2차 예선 경기 직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관중석 현수막 문구가 팬심이다. [뉴스1]

2017년, 호주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2026 북중미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면서다. 오세아니아 쿼터도 0.5장에서 1.3장으로 늘었다. 1위는 본선에 직행, 2위는 PO(6개국 중 2개국 본선행)행이다. 호주가 오세아니아로 돌아간다면, 그 1장을 차지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호주는 아시아에 남았다. 호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아시아의 월드컵 본선행 경쟁이 더 치열하며, 그런 강팀과 경쟁해 강해졌고, 더 강해질 수 있다. 스폰서십 및 중계권 등 시장가치도 그래야 더 오른다는 게 결론이었다.

남 얘기를 길게 한 건, 우리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지난달 26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태국에 3-0으로 이겼다. 일각에선 “3차 예선에 ‘사실상’ 진출했다”고 했다. 웃기에는 ‘사실’ 아직은 이른데 말이다. 한국은 보름 전 홈에서 태국과 1-1로 비겼다. 두 달 전에는 요르단에 0-2로 졌다. 그 직전엔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겼다. 대표팀 감독은 부재중이다. 3개 조로 진행하는 최종예선에서는 각 조 1·2위만 본선에 간다. 한국(FIFA 랭킹 22위)이 톱시드를 못 받으면, 이미 최종예선에 오른 일본(18위), 이란(20위) , 호주(23위) 중 한 팀과 같은 조에 묶인다. 요르단마저 같은 조에 속한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호주는 목표를 위해 대륙마저 바꿨다. 그렇게 해서 강해진 호주는 더 강해지려고 본선행이 ‘사실상’ 보장되는 길도 접었다. 한국 축구, 그 구심점인 대한축구협회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선임 당시부터 ‘사실상’ 우려를 샀고, 그 우려를 현실화 했던 감독 하나 바꾼 거로 다 됐다고 생각한 건 아닐 것이다. 한국 축구에 애정을 가진 이들은 ‘사실’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데 말이다. 변화를 위해서라면 수장도 바꾸는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