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경 즐기고, 치유의 샘물 마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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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서유럽과 이베리아 반도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 산맥이다.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 ‘피크 뒤 미디’ 전망대에 올라 3000m급 고봉들과 운해가 어우러진 풍광을 만났다.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서유럽과 이베리아 반도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 산맥이다.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 ‘피크 뒤 미디’ 전망대에 올라 3000m급 고봉들과 운해가 어우러진 풍광을 만났다.

‘피레네(Pyrenees)’는 지리 시간에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서유럽과 이베리아 반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이다. 피레네도 프랑스에 속하지만, 한국에서는 알프스보다 생소하다. 그만큼 한국인의 발길이 덜 닿았다는 뜻일 테다. 지난달 21~25일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과 주변 소도시를 탐방했다. 세계적인 종교 성지부터 경이로운 바위산, 기막힌 음식까지. 성(聖)과 속(俗)의 세계를 두루 경험한 시간이었다.

불치병도 낫는다는 기적의 마을

피크 뒤 미디에 있는 아찔한 포토존.

피크 뒤 미디에 있는 아찔한 포토존.

프랑스 피레네의 관문 루르드(Lourdes)는 흥미로운 도시다. 인구가 1만4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인데,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이 많다(약 350개). 이유가 있다. 루르드는 교황청이 인정한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 중 하나다. 전 세계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루르드 성당에 걸린 성녀 베르나데트의 사진.

루르드 성당에 걸린 성녀 베르나데트의 사진.

전설 같은 사건은 19세기 일어났다. 1858년 루르드 강변 동굴에서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 앞에 여인 한 명이 광채와 함께 나타났다. 소녀는 누군지도 모르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이후 17차례나 더 소녀에게 나타난 여인은 “나는 죄 없이 잉태했다” “죄인을 위해 기도하라”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라” 같은 말을 남겼다.

소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고 소문은 마을로 퍼졌다. 사람들이 동굴로 모여들었다. 물을 마시고 몸에 바른 사람 중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속출했다. 프랑스 전역이 루르드를 주목했다. 쉬쉬하던 루르드 지역의 주교는 1860년 수비루가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머지않아 교황청도 루르드를 성모 발현 성지로 지정했고, 1933년 수비루를 성녀로 시성했다.

성모 발현 성지인 루르드 동굴에 모여든 순례객.

성모 발현 성지인 루르드 동굴에 모여든 순례객.

요즘도 한 해 수백만 명이 루르드를 찾는다. 동굴과 성당을 순례하고 기적의 샘물을 물병에 담아간다. 순례객은 치유의 기적이 지금도 일어난다고 믿는다. 지난달 루르드에는 휠체어 타고 온 순례객이 유난히 많았다. 로랑 폰조 루르드관광청 마케팅 이사는 “교황청이 인정한 완치 사례만 70건이 넘고, 보고되지 않은 작은 기적은 수천 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인 루르드 요새.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인 루르드 요새.

성지이긴 하나 도시 전체가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가볼 만한 곳도 많다. 루르드 요새가 대표적이다. 1921년 산악인 부부인 루이스·마갈리드 르 본디디에르가 중세 요새를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피레네 지역의 등산·스키 역사와 산골 사람의 생활 풍습까지 흥미롭게 전시했다. 부부가 가꾼 정원도 아름답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대 암벽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바르니 지역. 빙하가 만든 절경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바르니 지역. 빙하가 만든 절경을 볼 수 있다.

루르드 요새는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였다. 요새 옥상에 올라가면 피레네 산맥의 고산 준봉도 또렷이 보인다. 산맥의 일부인 피레네 국립공원이 루르드에서 지척이다. 국립공원의 여러 명소 중 가바르니(Gavarnie) 지역을 가장 먼저 가봤다.

가바르니는 국경 너머 스페인 몽페르뒤(3355m)와 함께 199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가 가바르니 지역의 가치를 인정한 건 독특한 지질 때문이었다. 서유럽 판과 이베리아 판의 충돌, 빙하 침식으로 독특한 경관을 빚었다. 프랑스어로 서크(Cirque), 한자로 권곡(圈谷)이라 부르는 바위의 형상을 마주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곡면 TV처럼 휜 거대 암벽은 수직 높이가 1.7㎞, 둘레는 14㎞에 달했다.

가바르니를 여행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마을 입구에서 바위를 감상하며 산책을 즐기면 된다.  왕복 2시간의 개울 길을 걸었는데, 압도적인 풍모의 바위와 달리 마을 풍경은 정겨웠고 숨이 헐떡이지 않을 정도로 길은 완만했다. 늦봄부터는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단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교역로로 쓰였던 ‘퐁데스파뉴’ 다리.

프랑스와 스페인의 교역로로 쓰였던 ‘퐁데스파뉴’ 다리.

루르드에서 정남향으로 내려오면 코트레(Cauterets)라는 마을이 나온다. 온천과 스키로 유명한 국립공원 속 휴양 마을이다. 이곳에도 누구나 걷기 좋은 길이 있다. 해발 1460m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5분만 이동하면 험한 산속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너른 평지가 나온다. 진한 침엽수 향에 취해 걷다가 산장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여유를 누렸다. 하산길에 ‘퐁데스파뉴(Pont d’espagne)’라는 유서 깊은 돌다리를 만났다. 과거 스페인과 무역로로 쓰였던 다리다. 다리 옆 폭포에서 눈 녹은 물이 거칠게 쏟아졌다. 사방으로 물보라가 튀었고,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신의 물방울’ 몽투스 와인 한 잔

국립공원 안에는 피레네의 테라스라 불리는 ‘피크 뒤 미디(Pic du midi) 전망대’도 있다. 케이블카(어른 49유로)가 약 15분 만에 해발 2877m 산 정상에 도착했다. 루르드를 출발할 때만 해도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하늘은 지중해처럼 파랬고 융단 같은 운해가 산허리를 두르고 있었다. 최고봉 아네토 산(3404m)을 비롯한 무수한 바위산이 가시거리 끝까지 펼쳐졌다.

피크 뒤 미디는 유럽 최고봉 천체관측소이기도 하다. 방문객도 천문관 전시를 관람하고 영상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클레르 수카즈 매니저는 “전망대에는 객실도 15개 있다”며 “이곳에 묵으면 원 없이 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피크 뒤 미디는 프랑스 유일의 ‘국제밤하늘공원’이다. 그만큼 대기가 맑다는 뜻이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

자연 감상이 피레네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이곳이 프랑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지방의 향토 음식을 즐기는 재미도 크다. 세계 3대 진미로 통하는 푸아그라(거위 간), 흰 강낭콩과 돼지·오리고기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카술레가 특히 유명하다. 흑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햄도 빼놓을 수 없다. 루르드 시내에 햄 장인 ‘피에르 사주’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가봤다. 2년 이상 숙성한 햄을 시식했는데, 짜지 않고 고소해 계속 손이 갔다.

루르드 시내 샤퀴테리에서 맛본 햄과 와인.

루르드 시내 샤퀴테리에서 맛본 햄과 와인.

루르드 인근에는 꼭 들러봐야 할 와이너리도 있다. 옥시타니 지방 포도 품종인 ‘따나’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몽투스(Montus)’ 와이너리다. 와인 혁명가라 불리는 ‘알랭 브루몽’이 1980년 고성을 매입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뒤 여러 매체가 프랑스 최고 와인으로 꼽았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했고, 현재 대한항공이 몽투스 레드와인을 비즈니스석 기내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와이너리에서 파는 음식 맛도 출중하다. 살짝 익힌 푸아그라, 껍질 맛이 고소한 닭 안심구이를 씹다가 2016년산 따나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니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아찔한 맛이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여행정보=프랑스 피레네를 가려면 옥시타니 주 최대 도시인 툴루즈까지 항공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에어프랑스가 인천~파리 노선에 매일 취항한다. 파리~툴루즈 국내선은 수시로 뜬다. 툴루즈에서 루르드까지는 기차로 약 2시간 소요. 루르드는 연중 날씨가 온화한 편이지만 산악 고지대는 춥다. 피크 뒤 미디는 한여름에도 기온이 영하에 근접한다. 자세한 여행 정보는 프랑스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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