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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다" 이틀 뺑뺑이…100km 떨어진 병원 이송 뒤 사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차가 응급 환자를 급히 이송한 뒤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차가 응급 환자를 급히 이송한 뒤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수술할 의사 없다” 상급 의료기관 이송 거부

충북 충주에서 골절상을 당한 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숨진 70대 여성 사고와 관련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

4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5시11분쯤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A씨(75)가 전신주에 깔려 다리와 허리 등을 크게 다쳤다. A씨는 한 주민이 몰던 트랙터가 전신주를 들이받으면서, 전신주 밑에 깔렸다. 소방 구급대는 이날 오후 5시21분 현장에 도착해 A씨를 구조했고,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봤다고 한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구급대 도착 당시 A씨는 왼쪽 발목에 골절이 있었고, 허리 통증도 호소했으나 의식은 분명한 상태였다”며 “수술이 급하다고 판단해 환자 이송 요청을 돕는 ‘충북스마트시스템’ 단말기에 건국대 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 등 2곳을 입력해 이송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건국대 충주병원은 “마취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충주의료원은 “수술이 불가능하다. 미세분쇄골절은 미세혈관 접합이 가능한 큰 병원이나 권역외상센터로 가야 한다”며 환자를 받지 않았다.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병원 내부를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병원 내부를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발목 골절 수술 중 복부 출혈 확인 

병원 2곳에서 환자 이송이 거부되자, 구급대는 오후 5시50분 충주 시내에 있는 B병원으로 A씨를 옮겼다. 사고현장에서 B병원까지는 18.6㎞ 떨어져 있었다. B병원은 내과와 성형외과·재활의학과 등 3개 과목을 진료한다. 소방은 B병원이 수지접합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해 A씨를 이송했다.

A씨는 미세골절 부위 수술을 받았으나, 이 과정에서 복부 안에서 출혈이 발견됐다. B병원은 외과 의료진이 없어서 해당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병원 의료진은 인근에 있는 강원 원주의 연세대 세브란스기독병원에 전원 요청했으나, 이미 외과 수술 환자 2명이 대기 중이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청주의 충북대병원은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당시 권역외상센터와 응급실에 의료진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A씨 이송을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A씨는 이튿날 오전 1시50분쯤 충주에서 약 100㎞ 떨어진 경기 수원의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고 9시간여 만인 오전 2시22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상급 종합병원인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충북대병원에선 당시 전공의 대부분이 진료를 거부하며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A씨 이송이 거부된 이유가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으로 인한 의료진 수급 문제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병원 내부를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병원 내부를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주서 100㎞ 떨어진 병원 이송 후 사망

보건복지부와 충북도는 이날 충주 지역 종합병원 조처가 적정했는지 등에 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병원 진료기록부 열람 등을 통해 의료계 집단행동과 이번 피해 사례와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지역에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열악한 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충북도에 따르면 2022년 보건복지부 국민 보건의료 실태조사 결과 충북은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 사망자 수(50명)가 전국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1.57명)는 14위에 그쳤다. 충북연구원 의료서비스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 충북 도내 응급의료기관은 총 21곳이다. 유형별로는 권역응급의료센터 1개소, 지역 응급의료센터 5개소, 지역응급 의료기관 9개소, 응급의료기관 외 응급실 운영기관 6개소)이며 이 중 7개소가 청주에 집중됐다.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복지부 “병원 조처 적절성 확인 중”

보은군을 비롯해 증평·단양군은 15㎞ 이내에 응급의료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내 11개 시군 가운데 6개 군(보은·영동·증평·괴산·음성·단양)에는 종합병원도 없다. 지난달 30일 보은에서는 생후 33개월 된 여아가 물웅덩이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C양(3)은 보은읍 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 등 치료를 받고 한때 맥박이 돌아오기도 했으나, 상급병원 10곳이 전원을 거부해 신고접수 3시간10분 후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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