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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 100%' 그놈에 속수무책…포항·경주 덮친 '붉은 죽음'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경상북도 포항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들이 재선충에 감염돼 집단 고사한 모습. 사진 녹색연합

1일 경상북도 포항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들이 재선충에 감염돼 집단 고사한 모습. 사진 녹색연합

2일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 주차장 한쪽에는 밑동만 남고 베어진 소나무가 있었다. 지난해 11월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주차장 쪽 소나무들은 예방약을 맞지 않아 무방비 상태였다. 감염목은 살릴 수도 없고 주변에 퍼질 가능성 때문에 베는 게 최선이다. 토함산에 감염목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불국산 인근 주차장에서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돼 베어진 소나무 자리(노란원). 정은혜 기자

경북 경주시 불국산 인근 주차장에서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돼 베어진 소나무 자리(노란원). 정은혜 기자

포항·경주·밀양 등 경상권을 중심으로 소나무를 집단 고사시키는 재선충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대부분 사유림의 피해가 큰데, 최근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어 관리가 엄격한 토함산 국립공원도 재선충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 측은 지난해 10월 말 주차장에서 의심목을 발견했고 11월 감염이 확인됐다.

올해도 토함산 국립공원에는 감염이 의심되는 소나무가 잇따라 발견됐다. 전날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함께 석굴암 입구를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붉게 갈변한 재선충 감염 의심목 20여 그루가 포착됐다. 국립 산림과학원은 해당 나무에 대한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

1일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소나무재선충 감염 의심목. 사진 녹색연합

1일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소나무재선충 감염 의심목. 사진 녹색연합

환경단체 “재선충 손 쓸 수 없는 상태”

소나무재선충은 감염만 되면 고사율이 10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크기 1㎜ 내외의 소나무재선충은 매개충인 하늘소를 타고 반경 2~3㎞가량 이동하며 퍼진다. 확산 속도도 빠른데, 2000년대 들어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주기적으로 남부 지방을 위협하고 있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두 차례의 ‘대확산’ 시기가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3차 대확산이 시작했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했다. 녹색연합은 “포항·밀양 등 남부 지역은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1일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 해안도로. 재선충에 감염돼 집단 고사한 소나무가 도로 쪽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1일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 해안도로. 재선충에 감염돼 집단 고사한 소나무가 도로 쪽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실제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 해안도로 32㎞를 이동해보니 산 곳곳에 갈변한 소나무들이 고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 가장자리가 도로와 접해있는 대동배리 해안도로에는 집단 고사한 소나무가 힘없이 도로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소나무 집단 고사는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조류·곤충 등 생태계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산사태 위험도 증가시킨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매개충 활동 시기 증가…5월부터 시작”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현장에서는 기후변화 탓에 점점 재선충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매개충의 활동 시간과 시기가 늘면서, 감시해야 하는 시기가 길어진 반면, 방제할 수 있는 기간은 점차 준다는 것이다. 토함산 등 경주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이성우 경주국립공원사무소 문화자원과 계장은 “과거에는 하늘소가 6월에 활동을 시작해 10월에 활동을 마쳤는데, 최근에는 5월에 시작해 11월에 마치는 양상”이라며 “매개충 활동 시기에 예찰을 하고, 비활동 시기에 방제를 하는데 예찰 기간은 늘고 방제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나무들의 기후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원호 활동가는 “과거 대확산 당시에는 충분한 예산과 행정력을 투입해 잡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며 병해충 확산이 심한 데다 지난해 방제 예산도 깎여 손 쓸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앞으로 6개월~1년이면 포항 같은 극심 지역은 산불을 겪은 것처럼 황폐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재선충과 전쟁에 1137억 쓴 산림청, 올해 예비비 추가 투입

경주시 감포읍의 한 해변. 소나무에 소나무재선충 약제를 주입했으니 독성 우려가 있는 솔잎을 채취하지 말라는 노란색 안내문이 붙어있다. 정은혜 기자

경주시 감포읍의 한 해변. 소나무에 소나무재선충 약제를 주입했으니 독성 우려가 있는 솔잎을 채취하지 말라는 노란색 안내문이 붙어있다. 정은혜 기자

산림 당국은 아직은 재선충 상황이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2006년 첫 번째 대확산 당시 감염목은 137만 그루, 2014년 2차 대확산 때도 218만 그루까지 감염됐지만, 현재 확산세는 100만 그루 내외 수준으로 줄어드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다만 특별방제구역인 6개 시군(대구 달성, 경북 안동·포항·고령·성주, 경남 밀양)의 피해는 심각하다고 보고, 이 지역 산주가 신속하게 수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 지역은 방제를 제대로 못 한 탓에 피해가 과거보다 심각해, 특별방제구역으로 선포해 복구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지난해 예비비까지 투입해 1137억 원을 재선충 방제에만 썼다. 올해는 방제 예산이 805억 원으로 줄었는데, 재선충 피해가 심각해지자 예비비를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남성현 산림청장은 “현재 특별방제구역은 과거부터 소나무재선충 취약지역”이라며“소나무재선충 방제 예산이 805억원으로 줄면서 재선충 감염목도 다시 늘었는데, 예비비를 투입하려고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고 방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성현 산림청장 “소나무 초토화 주장, 과한 불안감” 

재선충에 감염돼 붉게 물든 채 고사 중인 경상남도 밀양 북부 소나무들. 녹색연합

재선충에 감염돼 붉게 물든 채 고사 중인 경상남도 밀양 북부 소나무들. 녹색연합

소나무가 기후변화 취약종이라는 점에서 침엽수보다는 활엽수 중심의 식재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남 청장은 “우리나라 소나무가 16억 그루인데 초토화되려면 매해 200만 그루씩 고사해도 800년이 걸린다”며 “현재 수종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어서 과한 불안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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