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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北, 거부권 행사 고맙다 말해"…유엔패널 해산 선물 대놓고 시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게 된 것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에 감사를 표했다"고 러시아 관영 매체가 보도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고유한 권한을 남용한 러시아의 선택이 결국 북한에 주는 '선물'이었다는 점을 버젓이 시인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성, '매우 고맙다' 말해"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가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며 "북한은 안보리 제재와 제재위 활동을 인정한 적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김 대사의 발언은 외신 중 타스 통신에만 유일하게 보도됐는데, 러시아가 사실상 '셀프 생색'을 낸 셈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달 28일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는 결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표결했지만, 러시아가 거부권을 던져 부결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응해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김성 주유엔북한대사가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응해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김성 주유엔북한대사가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당시 표결에서 바실리 네벤자 쥬유엔 러시아 대사는 "서구의 접근법에 놀아나고 있다"며 패널의 편향성을 탓했다. 그러나 북·러가 이처럼 임기 연장 불발에 대해 대놓고 '자축'하는 모습은 결국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북한에 일종의 '돈 안 드는 반대급부'를 줬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자기부정하며 北 두둔

북한의 포탄 지원에 대한 대가로 러시아가 핵·미사일 관련 핵심 기술 건네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안 그래도 '눈엣가시'와 같은 전문가 패널을 희생시킨 셈이다. 러시아는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지난달 13일, 관영 매체 인터뷰)고 말하는 등 스스로 구축해온 비확산 체제를 부정하며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행보가 사실상 '자기 부정'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유사 입장국은 패널의 임기 종료가 무색하게 북한의 제재 회피 행위을 겨냥한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유엔 밖에서 동맹·우방 간 중첩적·연쇄적 독자 제재를 통해 제재 망을 면밀히 가동하는 한편, 안보리 내에서도 대북 제재에 대한 논의의 동력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 패널은 사라져도 이보다 상위에 있는 대북제재위를 비롯한 제재 체제는 흔들림 없이 유지하겠단 의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北 '불법 사이버' 정조준 

당장 오는 4일 유엔 안보리에선 한·미·일 공동 주최로 사이버 안보와 관련한 회의가 최초로 열린다. 비록 아리아 포뮬러(Arria Formula·비공개 회의) 형식이지만,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안보리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겠다는 '신호탄'이란 해석이다. 그간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사이버 안보를 의제로 다루는 게 '적절치 않다'며 반대해왔다. 북한 인권 문제가 안보리에서 논의되는 걸 반대해온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 대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채택이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된 뒤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황준국 주유엔 한국 대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채택이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된 뒤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대북 제재를 더욱 촘촘히 유지하겠다는 움직임에 러시아는 미리 견제구를 던졌다. 정부가 최근 북·러 무기거래에 관여한 러시아 선박 등 러시아 소속 단체·개인 등을 타깃으로 독자제재를 가한 데 대해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비우호적 조치"라고 반발했다.

경제 분야 '주고받기' 계속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북한에 석탄·원유·식량 중심의 경제적 지원도 계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장관급 경제 협력 협의체인 북·러 경제공동위원회가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렸고, 지난달 말에도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이 이끄는 북한 경제 대표단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 관련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이와 관련, 4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북한이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를 화상으로 열어 1분기 경제계획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실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김덕훈 내각 총리가 회의를 지도했으며, 양승호 내각부총리는 "첫 분기 인민경제계획이 빛나게 완수됐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다방면 교류 등을 발판으로 경제 발전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3일 화상회의로 진행됐다"면서 회의에서는 "1분기 인민경제 계획 수행 정형이 총화되고 상반년 인민경제 계획 수행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3일 화상회의로 진행됐다"면서 회의에서는 "1분기 인민경제 계획 수행 정형이 총화되고 상반년 인민경제 계획 수행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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