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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글로벌 제약사, 한국에 주사침 '갑질'…공정위 제재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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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덴마크에 본사를 둔 제약사로, 당뇨병과 다이어트 치료제의 매출이 늘면서 유럽 상장사 중 시가총액이 가장 많다.

3일 노보파인 플러스 주사침이 온라인쇼핑몰에서 모두 품절 상태로 표시돼 있다. 인터파크쇼핑 캡처

3일 노보파인 플러스 주사침이 온라인쇼핑몰에서 모두 품절 상태로 표시돼 있다. 인터파크쇼핑 캡처

유럽 시총 1위 제약사 ‘갑질’ 제재

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서울사무소는 지난주 노보노디스크에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2020년 국내에 출시한 주사침 '노보파인 플러스'의 공급을 중단한 혐의다. 2022년부터 최근까지 노보노디스크가 거래상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노보파인 플러스를 공급하지 않고 있는 게 이른바 ‘갑질’이라는 취지다. 노보파인 플러스는 당뇨약이나 성장호르몬 치료제를 주사할 때 쓰는 주사침이다. 주사 시 통증이 적어 하루에도 수차례 바늘을 찔러야 하는 당뇨 환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제품 공급을 중단할 때는 생산을 중단하거나 계약상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결과 노보노디스크는 경영상 이유로 국내 판매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오젬픽의 전 세계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노보파인 플러스를 따로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젬픽엔 약물과 함께 노보파인 플러스 주사침이 포함돼 있다.

다이어트 약 잘 팔리자 공급 중단

수익성이 더 큰 다이어트 약에 주사침을 끼워넣기 위해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주사침 공급은 중단했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노보노디스크의 공급 중단으로 국내 당뇨병 환자 피해가 발생했다고 본다. 2021년 기준 국내 주사침 시장(230억원 규모)의 34%는 노보노디스크가 차지했다. 시장점유율이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노보노디스크의 공급 중단 이후 당뇨병 환자 사이에선 주사침을 구하기 위한 대란이 벌어졌다. 10살 아들이 있는 신미정(44)씨는 지난해 초부터 노보파인 플러스 주사침이 있는 곳을 수소문해왔다. 2022년부터 아이에게 성장호르몬을 주 6~7회 주사하는데 처방이 있어도 노보파인 플러스를 구할 수 없어서다. 신씨는 “약국을 여러 군데 돌아보고 중고장터도 찾아봤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며 “매일 주사를 해야 하는데 아이가 다른 제품은 아파해 주사침도 못 구하는 상황이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초부터 당뇨환자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노보파인 플러스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다. 네이버카페 캡처

지난해 초부터 당뇨환자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노보파인 플러스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다. 네이버카페 캡처

공정위는 조만간 심의를 열고 노보노디스크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심의 결과에 따라 시정명령과 수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노보파인 제품이 아니면 몸에 맞지 않아 사용하기 어려운 분들도 많다. 특히 당뇨는 적어도 하루 4번, 많으면 하루 10번씩 주사를 해야 한다”며 “회사 측에도 연락했지만 갑자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대체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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