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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렬의 시시각각

이재명 대표의 달콤한 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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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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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은 대한민국이 포퓰리즘 청정국이 아님을 보여준다. 온통 세금 깎아주고 현금 쥐여 주겠다는 말뿐이다. 포퓰리즘 공약 대부분은 선거가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앞으로 국가 정책을 오랫동안 비틀 것도 있다.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 국민 지원금 공약과 ‘셰셰(謝謝, 고맙다)’ 발언도 그중 하나다.

이 대표는 민생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 4인 가구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주자고 했다. 달콤한 말이다. 정부·여당의 반대로 실현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공돈을 주겠다는 야당 대표의 공약은 불황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거부하는 집권 세력은 민생에 무심한 것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현실성 낮은 전 국민 지원금 공약
‘셰셰’만으로는 안보·경제 못 풀어
총선 후 무책임한 정치 난무 걱정

어떤 나라도 처음부터 포퓰리즘 천국은 아니었다. 민생 지원이란 명목의 현금 살포에 맛들이고 중독되면서 망가져 갔다. 이 대표 말대로라면 돈(지역화폐)을 나눠주고 돌게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 그는 현 정권을 향해 “무식한 양반들아,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럼 많은 선진국은 바보라서 그렇게 하지 않나.

전 국민 현금 지급은 전통 경제학에서 비판하는 정책 중 하나다. 우선 효과가 크지 않다. 우리도 실험 전례가 있다. 코로나19 때 전 국민에게 25만원(4인 가구 기준 100만원)씩 줬다. 자영업 경기가 반짝 좋아지긴 했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매출 증대 효과가 투입 예산의 26.2~36.1%에 그쳤다는 분석(한국개발연구원)도 있다. 재난지원금이 들어오자 원래 지출하려던 돈을 쓰지 않고 아끼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돈을 풀면 필연적으로 물가를 자극한다. 이 대표가 흔들어대는 대파값이 더 올라갈 수 있다. 이 대표가 13조원으로 추산한 재원은 또 어떤가. 세금이 덜 걷히는 상황이니 빚을 더 낼 수밖에 없다. 다 국민 부담이다. 그가 이것만 주겠다고 한 게 아니다. 출생기본소득(8~17세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을 지급한다고 했고, 신혼부부에게 1억원 기본대출을 해준다고 했다. 국립대 전액 무상교육도 있다.

돈을 거저 준다는 제안은 솔깃하다. 그러나 공짜 점심이 없듯이 포퓰리즘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물가가 뛰고 재정이 무너진다.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만 사례가 여럿이다.

이 대표는 ‘셰셰’ 발언에서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또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나”는 말도 했다. 물론 국가 간 선린 관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셰셰’만으로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대만이 중국과의 대립으로 위기에 빠지면 한반도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주한미군의 대만 사태 개입과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대중 무역수지가 나빠진 것을 중국의 한국산 불매 탓으로만 보는 건 오진이다. 2차전지·석유화학·철강 등에서 양국 경합이 치열해진 게 큰 이유다. 중국을 그저 고마워한 이의 대명사는 아마 문재인 전 대통령일 거다. 그는 2017년 중국 방문 때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했다. 방중 기간 열 끼 식사 중 여덟 끼나 ‘혼밥’을 하면서도 불평 한 번 안 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우리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해 ‘한한령’ 등 경제 보복을 가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이런데도 ‘셰셰’가 만능키라는 말인가.

많은 이가 총선 후를 염려한다.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무책임한 정치가 난무할까 걱정한다. 이 대표에게 공천장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충직한 호위무사들은 이재명의 정치 구현에 앞장설 것이다. 정권은 국회가 견제한다. 그러나 야당엔 그런 견제가 없다. 한국 정치의 아킬레스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