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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제재 위반 의심 선박 나포…국내 항구서 조사 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북한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던 선박을 대북 제재 위반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지난달 30일 나포했다고 정부 소식통이 3일 전했다. 그간 국내에 입항한 제재 위반 의심 선박을 억류한 사례는 있지만, 영해에서 나포까지 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 민군복합항에서 확산방지구상(PSI) 고위급 회의 계기 해군과 해경이 승선 검색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뉴스1.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 민군복합항에서 확산방지구상(PSI) 고위급 회의 계기 해군과 해경이 승선 검색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뉴스1.

3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나포된 선박은 3000t급 화물선으로, 지난달 말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중국 산둥성 스다오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길이었다. 해당 선박이 정확히 어떤 대북제재 위반 의심 행위를 했는지는 관계 당국이 조사 중이다. 현재 선박의 선장이 화물창 개방을 거부한 채 조사에 불응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남포항이 북한의 불법 석탄 수출의 핵심 거점으로 알려져 있어 관련 행위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포는 지난달 30일 전남 여수항 인근 영해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미국이 제재 위반이 의심된다는 정황 정보를 우리 정부에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나포 뒤 선박을 부산 남항 묘박지로 이동시켰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당 선박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위반 혐의와 관련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자국 영해상에서 대북 제재 금지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은 나포할 수 있도록(may) 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2017년 12월 채택)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결의는 회원국 간 의심 선박에 대한 신속한 정보 교류도 의무화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의 해상차단 관련 대목. 결의 원문 캡처.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의 해상차단 관련 대목. 결의 원문 캡처.

앞서 정부는 2019년 2월 북한 선박과의 불법 환적이 의심되는 파나마 선적의 석유 운반선 카트린호를 부산항에 붙잡아 약 4개월동안 조사한 뒤 폐기하는 등 국내 항구에 입항한 제재 위반 의심 선박에 대해선 억류한 사례가 다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처럼 영해상 나포 조치까지 나선 건 보다 적극적으로 결의를 이행한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 있다.

나포 시점이 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불발된 직후라는 점도 주목된다. 2009년부터 대북 제재 이행의 감시탑 역할을 하던 전문가 패널은 러시아의 몽니로 오는 30일부로 활동을 종료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동맹·우방과 연대해 제재 감시망을 보다 촘촘히 운영해 패널 부재의 공백을 최대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전날에도 정부는 북·러 간 불법 무기 거래와 북한의 불법 해외노동자 송출에 관여한 선박 2척, 기관 2곳, 개인 2명을 새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정부가 러시아 국적 선박·기관·개인만을 대상으로 한 독자 제재를 발표한 건 처음이었다. 이 또한 러시아의 연이은 '제재 훼방' 행위에 대한 대응 강도를 높이겠다는 신호로 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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