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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 새역사 쓴 핀란드 사람, 토미 틸리카이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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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우승이 확정된 뒤 헹가래를 받는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 연합뉴스

우승이 확정된 뒤 헹가래를 받는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 연합뉴스

핀란드에서 온 토미 틸리카이넨(37) 감독이 대한항공과 함께 한국 배구의 새 역사를 썼다. 사상 초유의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대한항공은 2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3차전 OK금융그룹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2로 이겼다. 3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낸 대한항공은 2020~21시즌 이후 4년 연속 정규시즌과 챔프전을 석권했다. 역대 최초다.

지난 2년간 팀을 이끈 틸리카이넨 감독도 흐뭇해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피곤한 척 의자에 누웠던 그는 "OK 홈이고, 정말 강하게 나올거라 예상했다. 많이 흔들리고 힘들었다.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버티고, 교체로 들어온 선수들이 잘 했다. 이번 시즌을 돌아봤을 때 20명의 선수가 득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오늘 경기가 좋은 예시인 듯하다. 두터운 선수층으로 역사를 만들어낸 것 같다"고 했다.

챔프전에서 작전을 지시하는 틸리카이넨 감독. 연합뉴스

챔프전에서 작전을 지시하는 틸리카이넨 감독. 연합뉴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우승 직후 '통합 4연패'를 외쳤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우리 구단 구성원들에게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팬, 구단주, 사무국, 코칭스태프 등 모든 구성원들이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번 시즌은 투지의 한 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랬다. 작은 기회를 살려 뒤집은 적도 있다. 시즌은 끝났고, 좀 쉬고 싶다. 곧 다음 시즌이 온다. 새로운 배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18세 때 허리 부상으로 조기은퇴한 틸리카이넨 감독은 25세 때 지도자가 됐다. 이후 핀란드, 독일, 일본을 거쳐 2년 전 한국에 왔다. 그리고 두 해 연속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해처럼 그는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스태프, 선수, 관계자들에게 소주를 따르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다음 주 시상식을 마치고 고향 헬싱키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배구 여행도 하고 싶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른 배구도 보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여유로운 스케줄 안에서 지내고 싶다"면서도 "다만 그 전에 아시아쿼터 및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등 마무리해야할 일도 있다"고 푸념했다.

선수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틸리카이넨 감독. 뉴스1

선수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틸리카이넨 감독. 뉴스1

대한항공의 가장 큰 장점, 그리고 틸리카이넨 감독의 장점은 자유롭고 창의적이라는 거다. 그는 연습 때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도록 한다. 3차전 5세트 14-13에서 나온 챔피언십포인트가 대표적이다. 대한항공은 수비 이후 반격 기회를 잡았다. 미들블로커 조재영은 이때 날개 공격수 임동혁이 아닌 미들블로커 김민재에게 속공을 올렸고, 김민재가 마무리했다. 3년차 젊은 선수가 위험부담이 있는 속공으로 경기를 끝낸다는 건 쉬운 발상이 아니다.

김민재는 "재영이 형이 세터 출신이라 토스가 좋다. 원래 작전은 동혁이 형에게 올리는 거였지만 준비를 했고, 확실하게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며 "감독님께서도 그런 공격을 해서 정말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이 곧 입대하고, 베테랑 선수들이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고민을 마주한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이 질문에 "오늘은 즐기고 싶다"고 말한 뒤 "임동혁이 입대 전에 환상적인 마무리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시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성장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한항공은 정한용, 이준, 김민재 등 저연차 선수들이 한 층 더 나아진 기량을 보였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이미 5연패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우리는 다음 시즌에도 질 생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유지를 해야 한다. (5월 말)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면 열심히 준비할 시간이다. 올 시즌 했던 배구에 조미료도 더해야 한다. 우리의 배구를 보시는 분들이 기쁨, 영감을 얻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챔프전 MVP는 정지석에게 돌아갔다. 정규시즌 부진했던 정지석의 부활은 우승으로 가는 열쇠였다. 평소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꺼리는 틸리카이넨 감독도 이날만큼은 정지석을 칭찬했다. 그는 "정말 지석이가 이번 시즌 부상으로 힘들고, 괴로워했다. 챔프전 올라오면서 몸이 완성되고 좋은 플레이를 했다. MVP까지 받아 매우 행복하고 기쁘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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