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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제원의 시선

OTT 전성시대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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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여보, 아버님 댁에 OTT 깔아 드려야겠어요.”

조만간 이런 말이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놓아 드리는 대신 ‘OTT(over the top)’를 깔아 드려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다. 20~30대는 OTT란 말에 익숙하지만, 60~70대 이상의 실버 계층은 여기서부터 턱 걸릴지도 모른다. 음식점마다 급속도로 늘고 있는 ‘키오스크’ 만으로도 벅찬데 ‘OTT’는 또 뭐란 말인가.

티빙이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
쿠팡플레이도 무서운 성장세
노인도 디지털 접근 쉽게 해야

OTT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가 원할 때 방송을 보여주는 VOD 서비스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VOD는 또 뭔가. 비디오 온 디맨드, 즉 주문형 비디오를 말한다. 사용자가 요청하면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서비스라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OTT란 셋톱박스(TV)에만 국한하지 않고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여러가지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말한다. 주로 영화와 드라마 콘텐트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나 티빙, 애플TV,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쿠팡플러스 등이 모두 OTT 서비스다.

OTT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스포츠·엔터테인먼트로 영역을 넓히면서 이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불과 7~8년 전까지만 해도 OTT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 수준이었다. 당시만 해도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TV로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면 그만이었다. OTT 서비스가 없어도 그리 불편한 줄 몰랐다.

그런데 최근엔 사정이 좀 달라졌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티빙 등 OTT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이걸 깔지 않으면(이용하지 않으면) 일상 대화에도 끼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최근엔 극장 스크린에는 걸지 않고,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애플TV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영화도 적잖다. (오징어게임이 대표적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올해부터 OTT 사업자인 티빙이 KBO 리그의 온라인 중계를 맡으면서 프로야구 시청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TV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를 시청하려면 반드시 티빙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네이버를 통해 무료로 프로야구를 시청할 수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티빙을 깐 뒤 매달 돈을 내야 한다. 가장 싼 요금이라고 해도 월 5500원이다. 광고를 보고 싶지 않다면 월 1만3500원을 내야 한다.

지난달 서울 고척돔구장에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전이 열렸다. 일본의 야구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출전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개막전의 공식 명칭은 ‘쿠팡플레이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였다.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의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가 서울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개막전 주최를 맡았다.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의 입장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쿠팡플레이가 입장권을 쿠팡의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만 판매한 것도 티켓 전쟁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쿠팡플레이의 이용자(DAU·일간활성이용자수)는 3월 초엔 71만명이었는데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 3월21일엔 194만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보기 위해 가입자가 늘면서 이용자가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를 맡은 티빙의 경우에도 151만명 수준이던 이용자가 프로야구 개막일인 지난달 23일엔 198만명으로 늘었다.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로 재미를 본 쿠팡플레이는 올여름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과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를 한국에 초청할 계획이다. 김민재와 손흥민이 각각 다른 유니폼을 입고 서울에서 맞대결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단, 쿠팡 와우 멤버십(월 4990원)에 가입해야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콘텐트의 유료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다. 공들여 만든 콘텐트를 향유하기 위해선 돈을 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하고 있다. 티빙과 쿠팡플레이의 적극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OTT에 접근하기 어려운 노년 계층은 어쩌란 말인가.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문해력)’가 떨어지는 노인들은 이제 영화도 못 보고, 프로야구도 보지 말란 뜻인가. 월 5000원은 큰돈은 아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돈을 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나이 먹은 사람도, 지갑이 얇은 사람도 쉽게 OTT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될까. 요금 체계도 세분화하고, 가입도 쉽도록 문턱을 더욱 낮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