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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이젠 우아함 벗어날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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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15년 파가니니, 2022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특유의 탐구 정신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크레디아]

2015년 파가니니, 2022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특유의 탐구 정신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크레디아]

“지금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아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예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9)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그는 지난달 서울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연주곡은 19세기 대표적 바이올린 작곡가 앙리 비외탕의 협주곡 5번. 그는 그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연주자다. 음악은 꾸며내는 부분 없이 흘렀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이음매 없이 넘어갔다. 약간은 무심한 듯, 전반적으로 매끄러웠다.

왜 자신의 장점인 우아함을 넘어서려 할까. 그는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22년에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모두 한국인 최초다. 2022년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는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추가하지 않고 노래와 편안함을 만든다”고 평했다. “제 음악에 대한 대부분의 평이 ‘우아하다’ ‘유려하다’ ‘쉽다’…. 그런데 제게는 또 다른 산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기대한 대로 듣는 느낌을 넘어서고 싶어요.”

그는 연구하는 연주자로 꼽힌다. 연습 외에도, 논문이나 최신 저널 등을 훑고 숙고한다.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찾는 거죠.” 그는 최근 한 프로젝트에 꽂혔다. 작곡가들이 즐겨 썼던 셈여림표다. 소리를 키우다가(〈, 크레셴도) 줄이는(〉, 디크레셴도) 지시가 한꺼번에 있는 ‘헤어핀’(〈〉, 기호 모양이 머리에 꽂는 핀과 같아 붙인 이름)이다. 그는 “헤어핀 지시로 시작하는 음악만 모아서 연주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왜 헤어핀일까. 그는 “우리가 요즘 듣는 거의 모든 연주의 패러다임이 헤어핀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소리를 키우다가 줄이는 이 표시는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는 헤어핀을 내세운 곡들을 연주하면서 최근의, 또 앞으로의 연주 경향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 1번, 드보르자크의 4개의 낭만적 소품처럼 헤어핀으로 시작하는 작품을 골라서 모았다. 올여름 독일 크론베르크에서 공연할 예정인 그는 “브람스도 클라라 슈만에게 편지를 쓰면서 ‘친애하는 클라라’라면서 헤어핀을 적어놨다”며 “과연 낭만 시대 작곡가들에게 헤어핀은 뭐였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결국 연주 스타일이 갈 방향에 대한 고민과 만난다. 우아한 사운드, 감정적 해석을 넘어서는 스타일을 찾는 그는 “연주할 때 생각할 게 너무 많아지면서 스스로 복잡해졌다”며 “결국 어린 시절 연주했을 때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해법인 것 같다”고 했다. 파가니니 콩쿠르 이후 극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실황으로 녹음했다. 그의 현재 목표는 이런 기술적 완성과 거리가 멀다. “음악을 처음 시작해 바이올린 현을 그었을 때의 희열이 더 근본적인 기쁨이었다. 그 후에 콩쿠르에서 이기는 기쁨, 오디션에서 인정받는 희열 등 사회가 만들어준 쾌락에 너무 익숙해졌다. 순수한 기쁨을 더 즐길 줄 아는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거주지를 베를린에서 크론베르크로 옮기면서 음악적 시야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사한 집 바로 옆에 널찍한 연습실이 생겼다. 낭만 시대처럼도 해보고, 바로크 시대처럼도 해본다. 그러면서 음악을 다르게 듣게 됐다.” 라디오헤드 같은 록그룹의 열성 팬이고, 곡도 직접 믹스해온 그는 “요즘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바이올린 독주곡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얼마 전 꿈속에서 좋은 재료가 떠올라 두 마디를 적고 다시 잤다. 그걸로 시작해 현재 2~3분 정도까지 곡을 썼다”고 소개했다. 자유로운 환상곡 형식이라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목표다.

이번 달 그의 연주를 통영에서 들을 수 있다. 3일 베를린필의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등과 함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주한다. 4일에는 프랑스의 스타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와 함께 무대에 선다. 6일에도 파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과 바르토크·하차투리안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모두 2024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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