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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만 나오면 '비호감 대선'…이번엔 트럼프가 '덜 나쁜' 후보?

중앙일보

입력

역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했거나 출마할 예정인 3번의 대선에서만 후보자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하면 더 나은 후보를 뽑는 게 아닌 덜 나쁜 후보를 뽑는 이른바 ‘차악(次惡)’을 택하는 선거가 된다는 풀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좌측)과 조 바이든 대통령. 두 사람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두번째 맞대결을 펼치는 가운데, 미국 정가에선 이번 대선이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좌측)과 조 바이든 대통령. 두 사람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두번째 맞대결을 펼치는 가운데, 미국 정가에선 이번 대선이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AP=연합뉴스

미국의 ABC가 1980년 이후 12번의 미국 대선 직전 집계된 후보자의 호감도를 분석한 결과 두 후보의 호감도 평균이 마이너스 값을 보였던 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지난 두 번의 대선과 오는 11월 대선뿐이었다. 마이너스 호감도는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높다는 의미다.

특히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대결해 당선됐던 2016년 대선은 두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더 높았던 역대 최초의 대선이었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호감도는 -25, 클린턴 후보는 -12로, 역대 후보 중 각각 1·2위 비호감 후보로 기록됐다. 그런데 당시 미국 유권자들은 그나마 ‘덜 싫은’ 클린턴이 아닌 ‘더 싫은’ 트럼프를 택했다. 비호감도가 더 높은 후보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던 미국의 주류 언론들도 당시 선거 때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2020년 대선 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감도는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마이너스(-12)였다. 반면 플러스 호감도(+5)를 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은 ‘그나마 좋은 후보’로 인식되며 당선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올해 대선은 8년 전과 유사하다. 달라진 점은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덜 비호감이 가는 후보가 됐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현재 호감도는 여전히 마이너스(-10)다. 그런데 플러스이던 바이든의 호감도가 -15가 됐다. 유권자들에게는 바이든이 ‘더 나쁜 후보’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3번째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의 입장에선 처음으로 자신보다 더 비호감 후보와 대결하는 구도다.

비호감도가 높다는 것은 열성 지지층을 제외하면 중도 확장의 여지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에서 양 캠프가 모두 상대를 비난하고 자신의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치중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있는 이유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법 이주민 중 상당수는 감옥, 정신병원에서 오는 테러리스트이거나 마약상”이라며 “그들 때문에 미국이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어 “베네수엘라의 범죄율이 67% 감소했는데, 그것은 폭력 조직원을 미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29일 텍사스주 이글 패스의 미국-멕시코 국경을 방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29일 텍사스주 이글 패스의 미국-멕시코 국경을 방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불법 이민 문제를 지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내가 당선되지 않으면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라거나, 이민자를 ‘동물’로 지칭하며 강한 비판을 받았지만, 혐오 발언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2일엔 ‘피바다 사태’에 대해 오히려 강경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든 캠프 역시 진흙탕 싸움을 감수하는 기류다. 지난달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가 자금난에 몰리자 즉각 “‘빈털터리 돈’이 지하실에 숨어 있다(‘Broke Don’ Hides in Basement)”는 모욕적 별명을 붙인 보도자료를 냈다. 민주당 전략가인 마이클 스타 홉킨스도 정치 전문매체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저급해도 우린 품격있게 간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부활절인 1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부활절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용서하고 하나로 모여야 할 때”라면서도 “거짓 없는 시간으로 솔직해져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트럼프를 공격했다. 그러자 트럼프 캠프는 부활절 주말이 트랜스젠더 기념일(3월31일)과 겹친 것은 바이든 정부의 ‘불경’이라며 “수백만 가톨릭 신자와 기독교인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연례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에 참석해 한 어린이와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연례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에 참석해 한 어린이와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강경 기류는 인사 하마평에도 반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 당선시 재무부 장관 후보로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과 스콧 베센트가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존 폴슨은 오는 6일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대규모 모금 행사를 주최하고, 스콧 베센트는 행사의 공동의장을 맡았다. 당초 차기 장관 후보로는 트럼프 1기 때 미ㆍ중 무역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매수 공세로 지난주 상장 직후 수직 상승했던 트럼프가 설립한 SNS ‘트루스 소셜’의 모회사 ‘트럼프 미디어&테크놀로지그룹’의 주가가 이날 21.5% 급락하며 상장 전 가격으로 되돌아갔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여성 뒤에 트루스 소셜 네트워크 로고가 표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여성 뒤에 트루스 소셜 네트워크 로고가 표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가 급락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38억 달러(약 5조 1000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막대한 소송 비용이 필요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분의 조기 매각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주주인 트럼프의 주식 매도 금지가 해제되는 6개월이 종료되는 시점은 대선 직전인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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