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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효식의 시선

내일을 결정할 선택의 시간이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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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부장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한 선택의 결과다.” 스티븐 코비 박사가 1989년 펴낸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에 담은 삶에 관한 유명한 명언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한 선택의 결과가 될 것이란 다소 희망적인 뜻을 안고 있다. 그리고 4월 5~6일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제22대 4·10 총선의 선택의 시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개인 인생도 선택의 결과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대표자를, 최고 정책인 법률을 만드는 입법자를 선택하는 일은 시민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다. 선거에서 선택이 내일의 내가 어떤 나라에서 살게 될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51.7㎝ 역대 최악 선거
구조개혁 등 논의 총선 앞 올스톱
정당 비전·방향성은 보고 골라야

문제는 대다수 시민이 하루하루 생업으로 바쁘다는 점이다. 출퇴근길 사거리에 걸린 플래카드를 곁눈질하는 것만으론 지역구 출마 후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어렵고, 뭉텅이째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본 뒤 기표소 장막 안으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현 의석 1·2당을 기준으로 40% 안팎의 새 인물이 공천을 받았고 3당, 4당, 5당 후보도 지역구에 출전했다. 비례대표 후보까지 포함하면 최악의 선거제 꼼수로 위성정당·형제정당·자매정당들까지 난립했으니 어려워도 이렇게 어려운 선거는 처음이다.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만 51.7㎝ 역대 최장이 됐을 정도다.

더욱이 진영 간 극한 대결 속에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던 초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교육·연금 3대 구조개혁은 실종됐다. 고통 분담이 수반되는 구조개혁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25일부터 사흘간 연재한 ‘젊은 공무원 엑소더스(대탈출)’ 기획 시리즈가 생생히 보여준 공직사회 위기에도 대처해야 한다. 9급 공무원 기본급이 내년엔 세후 기준으로 병장 월급 205만원(기본급 150만원+내일준비지원금 55만원)에 역전된다는 단적인 현실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비효율 등 시스템 문제가 결합한 복합적 문제다. 그러니 정부의 밑동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일회성 급여 인상이나 승진으로 해결할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선거 앞에 나라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큰 문제를 거론하는 건 달갑지 않다. 구조개혁은 고사하고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당면한 갈등 해결을 위한 논의도 선거 앞에서 올스톱됐다.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장기화하면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묻지 마 1찍’이든 ‘닥치고 2찍’이든 양 진영의 목소리 큰 팬덤 세력에게 나의 선택을 대신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역구 출마 주요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무엇으로 나의 표를 호소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오늘 선택의 결과가 내일의 삶에 짧게는 4년, 길게는 자녀의 미래까지 오래도록 지속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253개 지역구 공약까진 아니더라도 각 정당의 대표 공약은 살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공약집을 기준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은 ‘아빠 출산휴가 1개월(유급)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150만→210만원)’ 등 저출생 문제 해결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50만호 등 ‘기본주택 100만호 조성’을 1호 공약으로 ‘2자녀 24평, 3자녀 33평 분양전환 공공임대 제공’을 2호 저출생 공약으로 내놨다. 녹색정의당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경제 전환’ ‘1만원 기후패스로 시작하는 2030년 무상교통’이 첫 번째 공약이다. 새로운미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이란 정치개혁을 앞세웠고, 개혁신당은 ‘첨단산업벨트 K-네옴시티 건설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놨다.

1, 2당 공약을 비교해보면 ‘철도 지하화 및 상부공간 개발’ ‘GTX 건설 확대 추진’ ‘중소기업 전기료 등 에너지 경비 납품가격 연동제 포함’과 같은 공통 공약을 내기도 했다. ‘윤·한(윤석열·한동훈) 심판’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으로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표를 구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확대엔 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공공리더십갈등관리연구실장은 “정책 이슈가 실종된 극단적 대결과 사탕발림 지역구 공약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유권자가 공약을 보고 합리적 선택을 하긴 쉽지 않다”면서도 “최소한 각 정당의 비전과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 인생에서도 중요한 선택을 미루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퇴보한다. 당면한 선택을 회피한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회피할 순 없기 때문이다. 국가 미래가 걸린 선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