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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번다더니…‘엔화로 미 국채 투자’ 이래저래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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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예상 빗나간 금융시장

엔화로 미국 국채를 샀던 ‘일학개미(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엔화 가치와 미국 국채 가격이 동시에 올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망에 이러한 투자법이 최근 유행했다. 하지만 실제 지표는 정반대로 나오면서 오히려 최근 손실이 커졌다.

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일본 증시 종목은 ‘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였다. 순매수 금액만 4억4639만8661달러(약 6024억1500만원)에 달한다. 해당 ETF는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일본 증시에 상장한 미국 장기채권 투자 상품이다. 이 ETF를 주식 종목처럼 사면 미국 장기채를 사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당 상품에 자금을 많이 투자한 배경은 미국이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거란 전망이 우세해서다.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미국 국채 금리도 하락하기 때문에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은 상승한다.

특히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국채 ETF를 산 것은 엔화 가치 상승까지 함께 노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면서 유례없는 ‘엔저 현상(엔화 가치가 다른 통화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양국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서 엔화 가치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러 엔화 가치 변동성에 노출된 미국 장기채 ETF를 사서 환차익까지 노렸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 가격은 최근 더 떨어지고(국채 금리는 상승) 있다. 예상보다 강한 미국 경제에 기준금리 인하 강도가 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실제 해당 ETF 가격은 지난해 12월 28일(1370.6) 대비 이날(1279)까지 약 6.68% 하락을 기록했다. 최근 일본과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분위기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엔화 가치까지 따졌을 때 손실 규모는 더 커진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예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엔저 기조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중앙은행이 최근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종료를 선언했지만, 추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더딜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엔화 값은 되레 더 떨어졌다. 실제 100엔당 원화 값은 지난해 28일(914.16원) 대비 이날(890.11원) 약 2.63% 상승(엔화 값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본격화하면 지금의 엔화 약세 현상이 해소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본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2분기 Fed의 첫 금리 인하(5~6월)가 시작되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 축소에 따른 엔화 강세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거시경제 변동성에 기인한 금리와 환율에 모두 투자하는 투자법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환율은 금리 차뿐 아니라 각국의 상대적 경제 기초 체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변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좁혀져도 미국 경제가 더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면 그만큼 엔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미국 국채 값과 엔화 가치가 모두 오를 거라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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