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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싸우는데 젠틀한 인물?" 의협 이럴 땐 늘 강경파 뽑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의약분업에서 원격의료, 의대증원까지 의사와 정부가 부딪히는 국면이면 어김없이 의사들은 강성파 수장을 내세웠다. 정부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임으로 보는 것이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너무 과격하다”는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친 칼이 필요할 때”라는 판단이 자중론을 압도한다.

"의대증원? 오히려 줄이자…대통령 사과하라"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차기 의협회장으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을 택했다. 5월 취임하는 임 당선인은 거친 말이 트레이드 마크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강하게 반대해 온 인물이다. “의사숫자가 부족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500~1000명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의 파면을 요구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대화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29일 기자회견에서는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후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후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의협 선거에서 임 당선인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의협 회원은 14만여 명에 달하지만 실제 투표권이 있는 회원은 5만 명 정도다. 일정 기간 회비를 납부해야 투표권이 주어진다. 투표권이 있는 회원 중 65%정도(3만3084명)가 참여했는데, 임 당선인은 그중 또 65%(2만1646표)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주수호·노환규·최대집 전 회장도 '강성파'

2012~14년까지 37대 의협회장을 맡은 노환규 전 회장도 대표적인 강성파로 분류된다. 연세대 의대출신 외과의사인 그는 2012년 포괄수가제와 이듬해 원격진료 도입이 거론되자 "의약분업(2000) 보다 심각한 사태"라면서 의사들을 거리로 이끌었다. 특히 2013년 원격진료 도입에 반대하며 2만여 명이 모인 궐기대회에서는 흉기로 자신의 목을 긋는 자해 퍼포먼스를 벌이며 논란이 됐다. 의대증원을 반대하면서도 그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글을 올려 국민여론에 불을 지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당선인과 결선투표를 벌인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도 강성파로 분류되는 인사다. 주 위원장은 노 전 회장처럼 연세대의대를 졸업한 외과의사다. 의약분업 당시 회장이 아닌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이사를 맡았지만, 사실상 투쟁을 이끄는 중심인물로 꼽혔다. 그는 2007년부터 2년간 25대 의협 회장을 역임했다. 주 위원장은 의대증원과 관련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로 고발당했는데, 지난 20일 경찰 소환조사를 위해 청사에 들어서며 "오늘부터 14만 의사의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수호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압수수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주수호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압수수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40대 회장인 최대집 회장은 정부가 의대증원을 확정한 후 의협이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시킨 인물이다. 상대적으로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필수 전 회장은 비대위 체제를 꾸리면서 2020년 문재인케어와 의대증원을 반대하는 의료총파업을 이끌었던 최 전 회장을 투쟁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이 총파업 당시 전공의들과 원만한 소통을 하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이 빗발치면서 결국 11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의협, 교수나 전공의 보단 개원의 중심  

의사들이 강성파를 수장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 의협은 개원의 중심 조직이다. 대학병원 교수들이나 대형병원 봉직의 보다는 자영업자라고 볼 수 있는 개원의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는 구조다. 이러다보니 의협이 내는 목소리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는 비판이 늘 있어왔다. 의대증원 국면에서도 의협-전공의-교수단체들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증원을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2000명을 던져놓고 받으라는 건 폭력이죠. 현실적 여건과 과학적 근거에 대해 당사자인 의사들이 납득을 못하면 설득을 하고 조정을 해야 맞는 것 아닌가요?”

이번 의협 선거에서 임 당선인에게 표를 던졌다는 개원의 A씨의 말이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500명 내외의 증원이 적절하며 맥시멈(최대) 1000명까지는 정부가 제시하는 필수의료 대책에 따라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증원 반대론자는 아닌데, 외려 의대 정원을 줄이자는 회장을 뽑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에 대해 A씨는 “그만큼 의사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투표로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와 싸움엔 거친 칼이 필요하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개원의 B씨 역시 임 당선인에게 표를 줬다. 그는 "의사들이 모두 과격한 발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강성파 회장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필수 전 회장과 추무진 전 회장 등 온건파가 수장일 때를 떠올려보면, 얻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정부와의 치열한 싸움이 한창이다. 젠틀하고 유한 사람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거친 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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