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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언론보도 아니었나?…"'반북후보' 비난 뒤엔 北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 인터넷 매체에 이번 총선에서 특정 정당의 당선권 순번을 받은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비판 기사가 게재됐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부추길 '반북·대결주의자'라거나 '반북·친미' 등 통상 기사에 쓰지 않는 표현도 곁들여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 해킹 영재 코스 금성학원 컴퓨터반. AP, 연합뉴스

북한 해킹 영재 코스 금성학원 컴퓨터반. AP,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안보수사 관계자는 "해당 매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A씨와 연결된 정황이 파악됐다"며 "신중하게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이념 성향의 매체를 표방하지만, 북한에 동조하거나 이롭게 할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허위 사실이나 주장을 유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다.

총선을 앞두고 '북한발 가짜뉴스 도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가짜뉴스 유포를 한국 내 사회 혼란 유발을 꾀하는 주요한 도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보도를 가장하거나 SNS를 활용하는 등 표현의 자유 뒤에 숨는 경우가 적지 않아 수사 당국도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29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정보당국은 최근 북한이 윤석열 정부 및 정치권과 관련한 허위정보 유포를 준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대남 도발·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신기술을 활용한 가짜뉴스 유포 등 영향력 공작 활동이 배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 홍보실에서 직원들이 각 후보들이 제출한 제 22대 국회의원 후보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7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 홍보실에서 직원들이 각 후보들이 제출한 제 22대 국회의원 후보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특히 정보당국은 중국이 지난 1월 대만 총통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AI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와 유사한 모델을 북한이 대남 공작에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1월 틱톡 등에선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를 둘러싼 성추문, 탈세 의혹 등 각종 허위 정보가 퍼졌고, 지난해 12월에는 생성 AI로 만들어진 라이칭더 인터뷰 딥 페이크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언론 매체들이 일부 있는데, 통상 신문법상 언론사로 등록돼 있다. SNS상의 활동도 다수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북한 지하조직이 위장 잠입활동을 하는 '블랙 요원'을 공개 활동을 하는 '화이트 요원'으로 둔갑시키는 전형적인 수법인데,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는 문제라 적극적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다.

실제 '창원 간첩단'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에 따르면 북한은 유튜브와 기타 SNS를 통한 여론전을 수행하라는 지령을 국내 지하조직에 내렸다. 2019년 6월 지령문에는 "보수 유튜브 채널에 대해 고소·고발전을 진행하고, 보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댓글이나 만평을 게시해 법적 문제를 일으키는 역공작을 펼칠 것"이란 구체적인 지시가 담겨있었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5월 "사상공세 작전을 박력 있게 하자"라고 촉구했다. 사진은 선전선동 활동에 나서는 평원군당위원회. 노동신문, 뉴스1

노동신문은 지난해 5월 "사상공세 작전을 박력 있게 하자"라고 촉구했다. 사진은 선전선동 활동에 나서는 평원군당위원회. 노동신문, 뉴스1

특히 공신력 있는 언론의 보도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가짜뉴스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비교해 확산 속도와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추구하는 언론사를 수사하는 데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칫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본래 목적을 수행하는 선량한 언론사까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으로 북한의 가짜뉴스 도발을 처벌할 수는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가 북한 이롭게 할 목적으로 '선동ㆍ선전하거나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해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할 때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북한의 지령 수령 여부를 먼저 밝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간첩 수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많은 수사 인력이 투입되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밝혀낸 뒤에는 이미 '구문(舊文)'이 돼 버려 배후가 가려져도 가짜뉴스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수사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대비 전국 선거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검찰청 선거전담 부장검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1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대비 전국 선거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검찰청 선거전담 부장검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1

인터넷 콘텐트의 차단 근거를 두고 있는 정보통신망법도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수행하는 정보'에 한해서만 차단 근거를 두고 있다. 북한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등 반국가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우 등이 아니고서는 당장 손을 대기 어렵단 얘기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 내부의 혼란 조성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북한 대남 공작기관의 조직적인 허위정보 유포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 북한발 가짜뉴스가 유권자에 영향을 미쳐 선거 결과가 왜곡되더라도 사후에야 연역적으로 따져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언론사까지 가장한 북한의 조직적 가짜뉴스 도발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정도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가짜뉴스 관련 법·제도의 미비로 대부분 명예훼손죄를 근거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 경제나 국가 안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가짜뉴스를 의도적으로 제작·유포할 경우 즉각 차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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