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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반대로 ‘대북제재 감시 패널’ 종료…“범죄자가 CCTV 파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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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10면

유엔 대북제재 약화 우려

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오는 4월 30일까지)를 종료하기로 한 것은 수십년 간 유지돼 온 대북 제재 역사상 가장 큰 퇴보로 볼 수 있다.

전문가 패널은 대북 제재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집단으로, 제재 위반 혐의를 추적하고 조사하는 데 특화됐다. 국제적으로 가장 포괄적이고 방대한 정보를 안보리에 보고하고, 일반에도 공개한다. 이를 통해 제재 준수를 독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전문가 패널은 15년 전인 2009년 만들어졌다. 이후 꾸준히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해왔기 때문에 다년간 축적한 정보를 토대로 장기 조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매해 두 차례 발간되는 보고서에 제재 위반의 소지가 있는 국가로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등 직·간접적으로 제재 준수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었다.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 임기를 끝낸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과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적 무기 거래를 계속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없앨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사실 대북 제재를 위반한다는 의혹을 가장 많이 받아온 중국과 러시아조차도 그간 전문가 패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패널이 위반 혐의를 제기할 때마다 답변서를 보내 제재를 준수하려고 노력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석탄 거래가 의심되는 위장 북한 선박의 자국 항구 정박에 대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식량을 적재하려던 것”으로 해명하는 식이었다. 적어도 제재 체제를 존중하는 틀 내에서 빈틈도 노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패널 종료와 관련해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마치 범죄자가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만 방법론적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제재 체제 자체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한·미·일 등이 임기 연장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이날 투표에 동의한 것도 러시아의 막무가내 주장으로부터 제재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매년 결의를 통해 연장하듯이 모든 대북 제재에도 매년 적시성을 검토하는 일몰조항을 넣자고 주장했다. 대북 제재도 매년 새로운 결의 채택을 통해 갱신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사실상 1년 뒤에는 유엔의 모든 대북 제재를 없애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제재를 잃을지, 패널을 잃을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물론 패널이 사라져도 제재위는 유지된다. 제재 위반 혐의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본래 제재위의 설립 목적이고 전문가 패널은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일부 권한을 위임받아 활동해 왔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도 투표 부결 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제재위는 지속되며 제재 체제 이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할 것”이라며 “안보리 이사국과 대북제재위 구성원 국가들은 대북제재를 포함한 모든 안보리 제재를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미·일과 호주, 유럽연합(EU) 등 뜻을 함께하는 동맹·우호국들이 연합해 독자 제재와 제재의 이행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마비된 안보리 기능 일부를 연합 제재망을 통해 메우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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