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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반려견 빼닮은 인형 만들고 동물 복제까지 시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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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12면

펫로스 증후군 앓는 반려인 급증

펫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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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뭉치 모아놓은 병을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아직은 보낼 때가 아니잖아요.” 10년간 함께했던 반려견 ‘싼쵸’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낸 지 20일이 지났지만 여느 때처럼 집에 보관 중인 유골함 앞에 밥도 주고 물도 준다. ‘싼쵸 아빠’ 강성일(41) 반려동물장례연구소장 얘기다.

지금까지 1만2000여 마리의 장례를 도왔던 그는 지난 7일엔 자신의 아이를 직접 염했다. 강씨는 그때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너무 힘들었다. 손쓸 새도 없이 떠나 버려서….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복제라도 하고 싶었다.” 지난 1월 심장병을 앓던 반려견 ‘기동이’를 보낸 정소현(30)씨도 16년간 동고동락한 기동이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씨는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며 힘들어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사별 후 겪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반려인들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 2022년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602만 가구에 1306만 명으로 집계됐다. 네 가구 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얘기다. 지난 23일 ‘국제 강아지의 날’엔 페북에만 축하 기념글이 150만 개나 게시되는 등 반려동물은 이제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KB경영연구소 조사에서도 반려인의 81.6%가 ‘반려동물은 가족’이라고 답했을 정도다.

문제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이 늘어나면서 사별에 따른 후유증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대병원 정운선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사별한 지 1년 미만인 반려인의 79%가 중증 이상의 우울감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메라니안 ‘코난이’를 떠나 보낸 김모(34)씨도 “사고로 죽을 뻔했을 때 코난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그런 생명의 은인이 먼저 떠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며 “절망감을 주체할 수 없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이처럼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반려인들이 늘면서 인형 제작이나 음악·미술 치료 등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코난이 아빠’ 김씨도 최근 인형을 주문했다. 사진만 보내면 똑같은 외형으로 제작되고 생전의 수염과 털도 심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김씨는 “코난이와 너무 똑같이 생겨 받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인형 제작자 김설아씨는 “지난해엔 주문이 두세 배 늘면서 연 200개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엔 펫로스 극복을 위해 ‘동물 복제’까지 시도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초엔 한 유튜버가 복제한 반려견 영상을 올리자 찬반양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 카페엔 반려동물의 체세포 채취 및 보관 방법을 묻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현재 국내법상 동물 복제는 합법·불법 여부에 대한 법조항조차 전무한 상황에서 국내외 복제 업체에 개별적으로 의뢰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에서 채취한 체세포는 액화질소로 냉동 보관해야 하는 등 보관 비용만 1년에 최대 1000만원 들고 복제 비용도 견종에 따라 6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와 관련,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최근 유튜버가 의뢰한 복제 업체를 고발했다. 조 대표는 “복제하려면 최소한 대리모견 10마리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윤리적 측면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목된다. 조 대표는 “생명윤리적으로 동물도 인간과 동등하게 봐야 하며 따라서 동물 복제가 수단화돼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래 반려동물과 성격 등이 결코 똑같을 수 없다”는 것도 반대 이유로 꼽힌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동물 복제는 ‘copy’가 아니라 ‘cloning’의 개념으로, 기존 반려동물과는 사뭇 다른 유전형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심할 경우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찬성 쪽 목소리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펫로스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한재언 변호사는 “동물의 생명도 소중한 건 맞지만 헌법상 인간과 동등한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며 “현행법상으로도 인간의 행복추구권이 우선돼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세필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장도 “반려동물을 난치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경험이 없으면 반려인들의 심적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며 복제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엔 복제 기술의 일환으로 맞춤형 세포를 생산해 반려동물의 난치병 치료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며 “이 같은 연구와 기술 축적은 인간의 행복추구권 보호를 위해서도 권장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반려인 1300만 명 시대’를 맞아 ‘반려동물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더 이상 소모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루속히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강성일 소장은 “이젠 가족처럼 받아들여지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한 변호사는 “난자 채취 시 학대, 기형아 처분 문제, 대리모견 복지 등에 대한 법 조항이 우선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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