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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6억으로 1400억 벌다… 청담 뒤집은 루이비통 '땅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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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명품거리 ‘명품 땅테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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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1인당 명품 소비액이 세계 1위(2023년 모건스탠리 분석 자료)라고 합니다. 그런 명품 소비의 메카답게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에는 루이비통, 샤넬, 구찌, 까르띠에, 버버리 등 많은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가 모여 있습니다. 갤러리아백화점 동(EAST)명품관에서 청담사거리까지가 약 700m인데, 이곳 6차로 도로변을 명품거리라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명품 브랜드 스토어는 20여 개입니다. 이런 명품거리의 땅값은 얼마나 될까요.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등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요즘 3.3㎡(1평)당 호가(매도 희망자가 팔기 원하는 값)가 4억5000만~5억원이라고 합니다.

1. 청담 땅 매입 1호 프라다…구찌·루이비통 등 뒤이어

루이비통

루이비통

가장 최근에 거래된 부지는 청담동 79-14번지 옛 갤러리아 주유소 부지인데, 505.5㎡가 지난해 9월 595억원에 거래됐습니다. 평당 3억9000만원 선인데, 그 이후 호가가 더 올랐다고 합니다. 청담동 명품거리의 경우 지금 물밑에서 매매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땅은 있고, 공식적으로 나온 매물은 없다고 합니다.

물론 호가대로 거래되긴 어렵다고 보는 부동산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청담동 명품거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고, 임대료 상승세도 최근 주춤한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샤넬

샤넬

청담동 명품 거리의 명품 브랜드 매장들은 땅이나 건물을 빌려 영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는 직접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디올, 프라다, 페라가모. 청담동 명품거리의 땅을 매입한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회사입니다.

가장 먼저 청담동 명품거리의 땅을 사들인 명품 회사는 프라다의 한국법인인 프라다코리아입니다. 프라다는 청담동 100-19 부지(609.5㎡)를 1996년 3월 49억9000만원에 매입했습니다.

페라가모

페라가모

프라다는 의류 등의 도·소매업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다른 명품 회사와는 달리 ‘부동산관리업’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청담동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프라다는 이곳에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150평)의 2층 매장을 꾸며 1997년 7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 세계 프라다 매장의 외관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를 담당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건축가 로베르토 바키오치의 작품입니다.

당시 청담동 명품거리에는 보그너, 도나카란, 미소니, 조르지오아르마니, 에스카다, 크리스찬디올 같은 명품 매장이 있었습니다. 프라다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는 지금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2. 금융위기 후 또 대거 러시…디올·샤넬 등 부동산 보유 

프라다

프라다

프라다에 이어 구찌코리아(청담동 99-15, 801.6㎡)와 루이비통코리아가 청담동 명품거리 땅을 매입했는데, 그 시점이 절묘합니다. 구찌와 루이비통은 각각 1998년 4월과 7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절정일 때 이 땅을 매입했습니다. 1997년 12월부터 1998년 5월까지 1만 개가 넘는 기업이 부도났습니다. 환율은 치솟고, 1998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5%를 기록했습니다.

청담동에서 영업하던 국내 부티크 회사 역시 어려웠고, 청담동 땅도 매물로 많이 나왔습니다. 한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을 때인데, 그때 청담동 땅을 사들인 겁니다.

구찌

구찌

루이비통 땅 매입 프로젝트는 당시 루이비통코리아 대표였던 조현욱 현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코리아 회장이 주도했습니다. 조 회장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에게 직접 제안해 땅을 매입하게 됐다고 합니다. 루이비통의 첫 해외 부동산 매입 사례라고 하네요.

땅 매입 가격은 더 놀랍습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청담동 99-18의 938㎡(284평) 부지를 ‘단돈’ 200만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서울 강남의 웬만한 30평대 아파트값보다 적은 약 26억원에 산 셈인데, 현재 청담동 명품거리 땅의 호가를 대입하면 이 땅의 시세는 1280억~1420억원입니다.

크리스챤 디올

크리스챤 디올

루이비통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루이비통 메종 서울 건물은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미국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등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고 내부 인테리어는 샤넬, 루이비통, 불가리, 디올 등의 매장을 디자인한 ‘패션 건축가’라 불리는 피터 마리노가 맡았습니다. 유리로 만든 돛으로 서울을 장식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0년에 지은 기존 건물을 2017년부터 2년 동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것인데,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한 쌍용건설에 따르면 공사비가 특급 호텔 공사비의 6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400억원 이상이 건축비로 쓰였습니다.

루이비통에 이어 페라가모코리아가 2002년 9월 청담동 141-15(651.8㎡, 197평)를 59억6000만원에 매입했습니다. 페라가모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국내 건축가인 이태웅씨가 설계했습니다.

이후 약 8년 동안 청담동 부지를 매입한 명품 브랜드 회사는 없었습니다. 2002년부터 강남 아파트값이 급등했고, 땅값도 덩달아 뛴 영향이 큽니다. IMF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상승세로 전환한 게 바로 2002년입니다.

3. “명품들, 위기 때 알짜 매입”…루이비통, 239평 또 사들여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청담동 명품거리 땅값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2010년 8월 크리스챤디올이 청담동 98-3번지 외 3필지(962.3㎡, 291평)를 541억원에 샀습니다.

디올이 이곳에 지은 하우스 오브 디올은 20m 높이의 흰색 유리섬유 패널로 이뤄진 건축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이 설계했고, 인테리어는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했습니다. 건축비만도 300억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후 샤넬이 2013년 까르띠에가 임대로 쓰고 있던 매장 부지 청담동 141-16(817㎡·247평)을 830억7220만원에 매입했습니다. 평당 3억3630만원꼴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청담동 땅은 10년 동안 ‘0’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10배 이상 올랐다는 얘기죠. 2002년 페라가모는 청담동 땅을 평당 3025만원에 매입했습니다.

루이비통과 샤넬은 1991년 거의 동시에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땅 매입 시점과 매입 가격은 차이가 많이 나네요.

명품 브랜드 회사의 청담동 땅 매입은 최근 10년간 잠잠했는데, 최근 루이비통코리아가 다시 청담동 부동산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대로변이 아니고 이면도로변입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12월 청담동 명품거리 이면도로에 있는 땅을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매일유업 지주회사인 매일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던 청담동 99-5번지(793㎡·239평) 부지를 504억원에 샀습니다. 3.3㎡당 2억1000만원인 셈이네요. 폴바셋 커피 매장, 매일홀딩스 자회사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있는 땅인데, 강남 일대 부동산매매에서 이런 건물값은 0원이고, 땅값만 매깁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이 부지에 새로 건물을 지어 레스토랑을 직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담 명품거리는 1980년대 초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아파트와 단독주택, 대형 빌라 등이 생기면서 부유한 이 지역 소비자를 따라 당시 일류 디자이너가 명동에서 옮겨오면서 형성됐습니다. 1995년 갤러리아 명품관이 들어서면서 ‘명품 거리’가 된 것이죠. 지난 30년 동안 청담동 명품거리는 참 많이 변했고 청담동 부동산 시장도 부침이 있었습니다. 청담동 명품거리에 땅을 산 명품 회사들의 투자성적표를 보면 남들이 위기라고 할 때, 매물이 많이 나올 때에 땅을 산 회사가 가장 큰 평가이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 꼭꼭 숨겨진 진실을 더 깊게 파헤칩니다. 부동산 거부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돈 되는 땅을 찾는 노력과 노하우, 땅을 치는 실패담도 들여다봅니다. 또 석연치 않은 업계 비리 의혹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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