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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괴생물체 또 출몰… "벌써 11년째" 어부들은 일손 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22년 3월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사진 행주어촌계

지난 2022년 3월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사진 행주어촌계

봄을 맞아 한강 하구에 실뱀장어의 천적이자 괴생물체인 ‘끈벌레’가 다시 대규모로 출몰하기 시작해 수중 생태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로 인해 봄철 실뱀장어 성어기를 맞았지만, 어부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11년째 한강 하구에서 매년 봄 이런 이상 현상이 이어지자 어부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끈벌레는 2013년 한강 하구에 나타나면서 처음 보고된 신종 유해 바다 생물이다. 20∼30㎝ 길이로, 지렁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한강 하구에서 37년째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66)씨는 27일 “연간 어획고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실뱀장어 철이 지난 21일부터 시작됐는데, 끈벌레가 잔뜩 걸려 올라오는 바람에 몇 마리씩 뒤섞여 잡히는 실뱀장어가 모두 폐사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그물 한 개에 5㎏ 가량 끈벌레가 걸려 나오고 같이 잡힌 5㎝ 정도 크기의 실뱀장어 100여 마리도 끈벌레에서 나온 점액질로 인해 모두 폐사한 채 올라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는 예년보다 며칠 이른 시기에 끈벌레가 강에서 출몰하기 시작한 데다 양도 훨씬 늘었다”며 “이런 상황이다 보니 더는 실뱀장어 조업에 나설 수 없는 노릇이어서 오늘부터 대형 그물 7개를 모두 묶어 둔 채 조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조업하는 행주어촌계에 따르면 10년이 넘도록 이런 현상이 지속하면서 어촌계 소속 어부 5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봄철 실뱀장어 조업을 포기한 상태이고, 20여명만 최근 일주일 사이 실뱀장어 조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끈벌레의 대규모 출현으로 인해 잡은 실뱀장어 95% 이상이 폐사하자 모든 어부가 일단 그물을 묶고 조업을 중단하고 있다.

한강 하구 어부들, 11년째 대책 없는 상황에 일손 놔

박찬수(65) 행주어촌계장은 “연간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봄철 실뱀장어를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어부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며 “매년 봄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데도 관계 당국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 한 어부의 그물에 괴생물체 ‘끈벌레’가 수북히 걸려 올라왔다. 끈벌레 사이에는 죽은 실뱀장어도 드문드문 보인다. 사진 행주어촌계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 한 어부의 그물에 괴생물체 ‘끈벌레’가 수북히 걸려 올라왔다. 끈벌레 사이에는 죽은 실뱀장어도 드문드문 보인다. 사진 행주어촌계

 어부들은 행주대교 기점으로 한강 상류 6∼7㎞ 지점에 있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에서 한강으로 배출하는 오염된 방류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주어촌계는 “5년 전 고양시의 연구용역에서 ‘높은 염도 등’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원인만 추정됐을 뿐 이후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한강이 국가하천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정확한 원인조사와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행주어촌계는 “높은 염분 때문이라면 전국에서 한강 하구에만 끈벌레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화식(69·행주어촌계 어부)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원장은 “신곡수중보로 물길을 가로막으면서 하수·분뇨처리장 2곳에서 배출되는 방류수가 정체되는 행주대교 일대만 끈벌레가 대규모로 출몰하는 것을 볼 때 방류수와의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이런 이상 현상은 행주대교∼김포대교∼신곡 수중보 사이 2.5㎞ 구간에서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전익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전익진 기자

행주어촌계는 이에 따라 서울시가 운영하는 하수·분뇨처리장 2곳의 배출구를 신곡수중보 하류로 이전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심화식 위원장은 “방류수 물길 정체로 인한 신곡수중보 상류의 한강 하구 오염을 염려해 서울시가 신곡수중보 건립 기획 단계부터 배출구 이전 필요성에서 사업을 추진한 뒤 수중보 준공 1년 후인 1989년 4월 기본설계까지 마친 바 있다”며 “이후 방류수 수질 개선을 전제로 시행에는 옮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서울시가 책임 있는 연구기관을 통해 정밀한 원인 규명을 새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용역조사 결과에서도 방류수 때문이 아닌 것으로 나온 만큼, 서울시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로 인해 끈벌레가 출현했다는 어부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하수처리장에서 방류 중인 하수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농도 10ppm 이하로 매우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해서 수질 정화 공법을 개발해 운영·관리한 결과 방류수의 수질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태여서 하수 방류구를 신곡수중보 하류로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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