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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모시기, 매달 5만원 내라뇨"…9급 사기 꺾는 악습 [젊은 공무원 엑소더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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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의 한 구청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 A씨는 지난해 상사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매달 직원이 5만원씩 걷어 과장과 밥을 먹는 '과장님 모시기'에 합류하라는 내용이었다. 상사는 친목 도모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 A씨는 "한 달 월급의 2.5% 정도를 과장님 모시는 데 쓰라니 악습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세무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이모(25)씨는 지난해 말 자신의 할머니가 주민센터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뒤 공직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할머니는 간병 방문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려 했다가 담당 공무원에게 “비슷한 민원인이 많아 도와줄 수 없으니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씨는 “화도 나고 회의감이 들어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공무원의 이탈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공직 내부의 자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불합리한 조직문화는 젊은 공무원의 책임감이 떨어지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공무원 6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직에 소속감을 느낀다”고 한 응답은 3.23(최고 5점)으로, 지난 2017년 3.49점에서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공무원을 그만둔 B씨는 “특정 파벌만 인기있는 업무를 맡거나 승진을 할 수 있고 과한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안일하고 형식적인 업무태도 역시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공무원에 대한 국민 인식이 악화하면서 인재 유입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경기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보신주의나 비능률적인 업무처리가 공직 전반에 대한 인식을 초래하면 공직을 희망하는 젊은층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탈을 고민하는 공무원에게는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공무원의 사기를 꺾는 공직 정치화·부패 현상도 경계해야 할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 사회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젊은 공무원의 근로의욕을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1400명과 기업인 700명, 전문가 630명 등을 상대로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 "공무원이 부패하다"고 응답한 국민은 38.3%였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직자가 정책을 잘 만드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줄을 잘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정치적 압력에 수동적으로 침묵하는 걸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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