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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마 위에 오른 '용인경전철'...수요 과다예측 배상 논란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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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전대,에버랜드를 오가는 용인경전철(용인에버라인). 연합뉴스

기흥~전대,에버랜드를 오가는 용인경전철(용인에버라인). 연합뉴스

 “용인시장은 (용인경전철 사업을 추진한) 이정문 전 시장 및 한국교통연구원과 연구원들을 상대로 214억여원을 지급하도록 청구하라.” 

 지난달 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가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 소송단’ 소속 주민 8명이 용인시장을 상대로 “경전철 사업 책임자들에게 총 1조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하라”며 낸 주민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내린 판결이다. 2013년 10월 용인경전철(용인에버라인) 관련 주민 소송이 처음 제기된 뒤 10여년 만에 나온 원고 일부 승소판결이다.

 앞서 1·2심은 “용인경전철 사업은 주민 소송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은 주민 소송이 가능하다며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용인경전철 사업이 명백히 잘못된 수요예측조사로 실시됐다면 주민들은 이로 인해 입은 손해를 청구하는 소송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재판부는 이 전 시장이 ▶민자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을 협약에 포함했고 ▶시의회의 사전 의결 절차 등 법령상 필요한 절차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교통연구원과 연구원들에 대해선 “용인경전철을 둘러싼 여러 환경이 많이 변하였는데도 과거의 자료를 거의 그대로 사용해 예상 수요를 산출함으로써 용인시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

2013년 개통 초기 용인경전철 객차가 비어있다. 연합뉴스

2013년 개통 초기 용인경전철 객차가 비어있다. 연합뉴스

 이번 판결은 지자체의 민자사업 실패로 발생한 예산상 손해에 대해 공무원은 물론 수요예측을 담당한 연구기관과 연구원들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용인시가 판결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법원에서 실제로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물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이미 관련 학계와 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수요예측 분야는 물론 민자사업 전체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사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용인경전철의 예상수요가 과도하게 예측된 건 맞다. 2001년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시한 1일 예상수요는 13만여명이었다. 그러나 2013년 개통한 용인경전철의 승객은 예상치의 5~13%에 그쳤다. 최근엔 승객이 많이 증가했다지만 여전히 하루 3만여명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핵심은 고의성 여부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예상수요를 뻥튀기했느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상당한 오차 가능성이 내재할 수밖에 없는 교통 수요 예측작업의 본질적 또는 불가피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87~95%나 부풀려진 수치의 예측값은 그 자체로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고의성에 무게를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용인에버라인 노선도.

용인에버라인 노선도.

 김동규 서울대 건설공학과 교수는 “수요예측이 과다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해당 사업의 수요예측이 이루어진 시점이 현재보다 교통량 관련 데이터베이스(DB)와 수요추정 방법론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걸 고려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정밀한 교통량 관련 자료를 담은 ‘국가교통 DB’ 구축사업이 1단계 완료돼 자료를 처음 공개한 건 2002년이었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민자사업뿐 아니라 공공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자료나 방법론이 정립된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수요예측을 한 연구원이 고의로 수요를 부풀려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토록 했다고 보는 건 결과론적 해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당시엔 계획에 없던 도로와 버스노선 신설 등이 실제 수요에 미친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수요예측 이후 23개의 도로망과 43개의 버스노선이 신설됐다고 한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교수는 “당시 수요예측 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추진 이후 광역버스 운행,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시행 등 수단간 경쟁 여건이 변화했음에도 이를 보완할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민자사업을 추진해온 건설업계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하성호 GS건설 상무는 지난 14일 ‘민간투자사업 수요예측 불확실성 위험과 법적 책임 범위’를 주제로 열린 한국교통정책경제학회 토론회에서 “신분당선과 우이신설 경전철 역시 예측수요의 30~40%에 그치고 있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자사업자도 최대한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려고 하지만 오차가 크게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번 판결처럼 지자체 민자사업에 책임추궁의 리스크가 있다면 앞으로 민자사업 활성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0년 7월 용인경전철 사업의 책임을 물어 용인시민들이 용인시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을 마친 뒤 주민소송 측 변호인이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7월 용인경전철 사업의 책임을 물어 용인시민들이 용인시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을 마친 뒤 주민소송 측 변호인이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선 고의성 여부에 집중해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경우 한양대 건설교통학부 명예교수는 “수요예측의 허용한계와 부실 정도 및 고의성 유무 같은 법적 문제와 교통 수요예측의 학문적 한계가 서로 상충된 상황”이라며 “수요예측이라는 학문적인 영역의 정교화 정도를 법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차제에 수요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도시철도 사업의 교통 수요 과다추정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줄이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와 사후평가 사이에 중간타당성조사를 신설해 그간의 변화사항을 새로이 반영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도로, 철도 등 교통 분야 수요예측은 10~30년을 내다보고 진행하기 때문에 경제성장률과 도시개발 추진 여부 등 다양한 외적 요인에 의한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추정오차 또한 커질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수요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근거자료의 객관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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