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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 놀림 받던 中반도체 "이제 TSMC도 우리 장비 쓴다" [新반도체 삼국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중국 1위 장비업체 나우라 부스에 전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중국 1위 장비업체 나우라 부스에 전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독자 제공

“중국 전시회에서는 외국산 반도체 장비를 그대로 베낀 ‘카피캣’ 기업들이 우르르 나오는데, 해마다 이 회사들 장비가 더 정교하고 더 세련되어지는 게 눈에 보입니다.”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최대 규모 반도체 소부장 전시회 ‘세미콘 차이나’에 다녀온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매년 갈 때마다 전시 규모가 커지고 기술이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라며 “중국의 반도체굴기가 무섭도록 실감난다”라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총 1100개의 기업이 참가했다. 미국 기업이나 ASML 같은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부스는 없지만, 이들의 빈자리는 한국·대만·일본 일부 기업과 자체 개발 장비를 소개하는 중국 기업들이 채웠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발전을 막기 위해 2019년부터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재가 무색할 만큼 중국은 장비 산업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 올리고 있다.

중국판 ASML·램리서치 다 있다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SMEE의 노광장비를 설명을 보고 있는 관람객. 독자제공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SMEE의 노광장비를 설명을 보고 있는 관람객. 독자제공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ASML’이라는 별명을 가진 국영 반도체 장비업체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 부스에는 28나노미터(1㎚=10억분의 1m)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의 기술 수준을 묻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이 기업은 지난해 말 자체 기술로 28나노 EUV 장비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지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ASML로 부터 첨단 장비를 들여오지 못하는 중국에 반도체 제조의 핵심인 노광 장비 자체 개발은 중요한 과제였다. 화웨이가 EUV보다 아랫 단계인 심자외선(DUV) 장비를 활용해 7나노 칩까지 만들어 낸 만큼, 자체 EUV 노광 장비를 확보한다면 7나노 이하 제조도 자체 기술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장비업체인 나우라(북방화창)는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마련했다. 나우라는 증착·식각 장비 업체로 중국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로 불린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진룽자오 나우라 대표는 21일 이 행사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반도체 기술 발전은 제조 장비의 혁신에 달렸다”라며 “나우라의 지난해 매출(추정치)은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해 매출 기준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가 됐다”라고 말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AMAT·ASML·램리서치·도쿄일렉트 4개 기업이 70%를 차지하며, 상위 10개사 중 한국과 중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식각 장비를 생산하는 ‘중국의 램리서치’ AMEC의 제럴드 인 회장은 행사에서 지난해 회사의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으며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 장비의 80%를 연내에 중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IT 팁스터’(신제품 정보유출 전문가) 레베그너스는 이 회사 관계자를 인용해 “회사는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대만 TSMC도 AMEC 장비를 사용한다”고 자신의 X 계정에 밝혔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장비의 전 세계 판매량은 2% 감소했지만, 중국 본토 내에서 판매량은 28% 증가했다. 이 증가분을 중국 장비 업체들이 판매했을 수 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중국도 “미국 칩 금지”

중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는 정부의 다각적 지원 영향이 크다. 중국 정부는 사상 최대 270억달러(약36조원) 규모의 반도체 자립 펀드를 조성해 기업을 밀어주고 있다. 중국 1위 장비 기업 나우라 역시 이 펀드의 지원을 받았다.

중국 정부는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자국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외국 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등 시장 환경 조성에도 적극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안보 위협’을 명목으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수출 제재를 해왔는데, 안보에 위협되지 않는 소비재에 한해서는 수출을 허용하며 실리를 챙겨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런 미국산 소비재 사용을 금지시키면서 대중 제재에 맞불을 놓고 있다. 자국 기업의 자생력을 키우려는 목적도 크다. 중국 정부는 아이폰에 이어 인텔과 AMD 등 미국 기업들의 마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개인용 컴퓨터와 서버를 정부 기관에서 퇴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전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전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독자 제공

한국 반도체 업계 영향은

중국 반도체 생태계의 성장을 지켜보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분위기는 착잡하다. 당장은 중국의 성장이 국내 장비업계의 매출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이 장비 산업을 내재화하면서 한국 업체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국의 제재가 미치지 않은 후공정 장비를 중심으로 한국 업체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하다. 올해도 동진세미켐 등 47개 기업이 세미콘 차이나 ‘한국관’에 참가한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선 반도체 혹한기가 이미 바닥을 쳤고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분위기”라며 “장비 기술은 생산성과 정확성이 핵심인데, 중국 장비의 스펙이 현재는 한국보다 떨어져도 2~3년이면 추월당할 분야가 생기겠단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Heyan Technology 부스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이 기업은 중국의 빅펀드 투자를 받아 성장한 곳이다. 독자 제공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 Heyan Technology 부스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이 기업은 중국의 빅펀드 투자를 받아 성장한 곳이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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