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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떠나는 젊은 공무원, 국가 서비스의 큰 위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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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봉에 악성 민원, 1년 차 공직 3020명 사직

낡은 조직문화도 한몫, 결국 국민도 피해

지난해 임용된 지 5년이 안 된 공무원 중 1만3566명이 사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3020명은 1년 차에 그만뒀다. 한때 93.3대 1까지 치솟았던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올해 21.8대 1로 32년 만의 최저치다. 안정적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공무원이 매력이 떨어지는 차원을 넘어 구조적으로 버티기 힘든 직업이 됐다면 심각한 일이다.

공직을 금세 포기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낮은 급여다. 9급 초임 공무원의 기본급은 187만7000원이다. 최저임금(주휴수당 포함 월 206만원)보다 작고, 내년엔 병장 월급(내일준비적립 지원금 포함 205만원)에도 역전당하게 된다. “나중에 아이 교육을 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는 호소가 과장이 아니다.

조직문화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수당을 못 받는 초과근무가 일상이고, 행사 의전을 위해 동원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인사관리도 주먹구구다. 25일 한국행정연구원이 주최한 공직 생활 실태 세미나에서는 변호사 출신 사무관에게 서무 일만 시키고, 신입 전산직에게는 부서에서 가장 어려운 일만 맡기는 등 기가 막힌 사례들이 소개됐다.

악성 민원은 더 심각하다. 행패를 넘어 폭력을 쓰는 민원인도 적지 않다. 최근엔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노출해 항의에 시달리게 하는 ‘좌표 찍기’도 성행한다. 그러니 MZ 공무원들 사이엔 “우리가 공노비냐”는 반발이 나오고, 공직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고시 출신 공무원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 5급 공무원의 72.7%, 30대는 52.7%가 기회가 생기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격무와 박봉에도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자긍심이 있었는데, 요즘엔 대통령실과 국회의 뒤치다꺼리만 한다는 인식이 크다고 한다. 소신 있게 일하면 물을 먹고, 권력기관이나 고위 공무원의 요구를 잘 수행하면 나중에 ‘직권남용’ 등으로 감옥에 갈 수 있으니 복지부동이 최고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공적 영역은 시장이 단기에 해소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워 사회가 지탱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 때론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 성공을 위해 사회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기도 한다. 아울러 공직은 민원인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국민 안녕을 점검하는 역할도 한다. 그 자리를 떠나는 이유가 열악한 박봉, 전근대적 조직문화 때문이라면 결국 국민도 그런 공적 조직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의 대탈출은 국가 서비스의 심각한 위기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려면 제 값을 내야 한다. 조직도 건강해야 한다. 특히 최일선에서 대민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지 않도록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들도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