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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의대 증원’ 상수 아닌 변수 되나…셈법 복잡해진 대학

중앙일보

입력

25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25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내부에서는 아예 (배정된 증원분이) 감축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의대 신입생 모집에 대응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비수도권의 한 대학 처장은 25일 향후 의대 증원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학별 정원 배정 이후 상수로 여겨졌던 ‘2000명 증원’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원 조정 가능성에 교육부 “예단하지 않겠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요구안이 든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요구안이 든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큰 변수는 의대 교수와 학생의 반발이다. 이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속 교수들은 “의대 증원 및 배정 철회 없이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며 앞서 예고한 대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생의 집단 행동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4일 기준 전체 의대생(1만8793명)의 절반가량(48.5%, 9109건)이 유효 휴학을 신청했다.

정부는 여전히 “정원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 교수·학생의 강경 기조가 지속될 경우 정원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날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히는 등 원칙 대응에서 협상 쪽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자 이런 관측에 더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이날 교육부 관계자는 정례브리핑에서 증원 조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2000명 증원이 발표됐고, 이에 따라 절차가 진행 중이다.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변동된 게 없다”고 했다.

의평원 인증평가 걸림돌 “폐교 처분할 수도”

2020년 4월 22일 오전 광주 동구 불로동에 5·18 사적지로 등록된 옛 광주적십자병원 부지가 방치되어 있는 모습. 옛 광주적십자병원 이후 서남대병원이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운영했지만 경영난을 문제로 지난 2014년 문을 닫았다. 뉴스1

2020년 4월 22일 오전 광주 동구 불로동에 5·18 사적지로 등록된 옛 광주적십자병원 부지가 방치되어 있는 모습. 옛 광주적십자병원 이후 서남대병원이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운영했지만 경영난을 문제로 지난 2014년 문을 닫았다. 뉴스1

의평원의 의대 인증평가도 증원의 걸림돌로 꼽힌다. 의대 교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의평원은 교육부가 지정한 의과대학 교육 평가 인증 기관이다. 정기적 평가 외에도 정원이 10% 이상 늘어날 경우 별도의 평가를 시행한다.

전날 의평원은 성명서에서 “증원에 걸맞는 교육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하나 이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가에서 불인증을 받는 대학은 관련 법령에 따라 정원 감축 및 모집 정지, 학생의 의사국시 응시 불가와 더불어 폐교까지 처분될 수 있다”고 했다. 증원 규모가 큰 만큼 인증 평가에서 ‘불인증’ 처분을 받는 대학들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교육계 안팎에선 의평원의 ‘불인증’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수도권의 한 사립대 총장은 “의평원 입장에서도 불인증 카드는 6년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인데, 느슨한 평가도 안 될 말이지만 기준 이상으로 엄격하고 까다롭게 평가해 불인증 의대를 양산하는 것은 큰 부담”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이날 의평원 성명서에 대해 “의료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며 “우려를 불식시키고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의대 운영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교육 여건 마련을 위한 대학의 준비와 정부의 지원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의대 운영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교육 여건 마련을 위한 대학의 준비와 정부의 지원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으로도 정원 조정의 여지가 남아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60조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시정 또는 변경 명령을 받은 자가 이행하지 않으면…(중략) 그 학교의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또는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교육부는 이 조항을 들며 “배정된 정원을 축소하거나 확대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계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엄밀히 말하면 대학이 증원분보다 감축해 신입생을 뽑더라도 교육부장관이 ‘조치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총선 이후 혼란 가중될까 “정원에 대한 정부 의지가 큰 변수” 

4월 총선이 의대 증원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학들이 정원을 확정해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신입생 모집계획을 제출하는 것은 총선 후인 5월 말까지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총선 이후) 증원에 드라이브를 거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질 경우 대학 내에서도 추진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증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학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증원은 했는데 지원은 못 받게 되는 경우다. 비수도권의 한 국립대 처장은 “국립대는 그래도 살려주겠지만, 사립대의 경우 사학진흥재단이 예산 확보를 못 해서 융자 지원을 제대로 못 해 주고, 그 결과 교육 투자 제대로 못 해서 의평원 심사 탈락해 의대 폐교되면 ‘제2의 서남의대’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고 했다.

다만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와 관계 설정이 중요한 만큼, 배정받은 정원을 먼저 줄이겠다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부가 증원에 대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 총장은 “우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과 투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다만 총선 이후 교육부·정부의 의지를 잘 파악하는 게 숙제일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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