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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공화정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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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지난주 역대 최고 득표율인 87%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선 선거 승리가 공식 승인됐다. 서양 각종 매체에서는 이번 러시아 대선을 ‘조작 선거’라 규정하고 주민 검열, 강제 투표, 그리고 투표 조작을 언급하며 맹비난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푸틴 정권은 그에 대항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물들을 투옥하고 추방해 체계적으로 견제했다. 푸틴과 함께 대선 출마한 후보 세 명의 득표율이 4% 이하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편지

아메리카 편지

서양 민주주의의 근원이라 하면 직접 민주주의를 채택한 고대 그리스를 흔히 생각하지만, 500년 역사의 고대 로마 공화정(BC 509∼27) 또한 현대 민주주의 체제와 공통점이 많다. 최고 관직인 집정관은 오늘날의 대통령과 비슷한 권한을 갖지만, 해마다 두 명의 집정관이 선출돼 상대방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집정관 후보는 원로원에서 지명했고, 대중 집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로마의 원로원은 그야말로 오랜 역사와 지구력을 과시한 정치기구다. 300∼600명의 원로로 구성된 이 의회는 실질적으로 사회·정치 전반의 결정권을 장악한 통치 기구로, 한사람이 세력을 결정적으로 장악할 수 없도록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와 정권을 장악하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로마의 첫 독재자는 결국 공화정을 되찾고자 하는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23번의 칼 찔림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했지만, 로마제국의 미래는 돌이킬 수 없었다. 카이사르의 말 그대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던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황제 권력과 기독교의 신권이 결합하면서 절대권력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그나마 한국의 선거제도는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 로마 공화정의 건강한 측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