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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무관" 선긋는 美…일부선 '전쟁 명분' 러 자작극 주장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은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와 관련 “우크라이나가 연루된 징후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불탄 크로커스 시청 콘서트장의 내부 모습. 러시아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33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입원했다.EPA=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불탄 크로커스 시청 콘서트장의 내부 모습. 러시아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33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입원했다.EPA=연합뉴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테러 발생 직후인 22일 브리핑에서 “끔찍한 총격의 희생자들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인이 연루돼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강조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별도 성명에서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국가(IS)를 거론하며 “IS는 모든 곳에서 물리쳐야 할 공동의 적”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반응이 이번 테러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떠나면서 신문과 휴대전화를 들고 마린 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떠나면서 신문과 휴대전화를 들고 마린 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를 테러의 배후로 몰아가고 있다. 푸틴은 대국민 연설에서 “(용의자가)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고 한다”며 “범죄를 저지른 모든 가해자와 조직, 배후를 모두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어렵고 견딜 수 없는 시련을 반복적으로 겪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강해졌다”며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보복 공격을 시사했다.

다만 이날까지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가 테러에 연루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번 테러의 배후를 사실상 우크라이나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시사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번 테러의 배후를 사실상 우크라이나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시사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박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건과 어떤 관련도 없다”며 “러시아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고 터무니없다”라고 밝혔다.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HUR)은 더 나아가 “모스크바 테러는 전쟁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자작극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미국 언론도 이번 테러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푸틴 집권 이후 발생한 석연치 않은 테러 사건들을 재조명했다.

AP통신은 “이번 테러는 푸틴이 집권한 과거 25년 동안 발생한 일련의 폭탄 테러와 인질극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일 뿐”이라며 1999년 푸틴이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이후 발생한 테러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1999년 9월 모스크바 주택가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307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당시 러시아 당국은 체첸 분리주의 지역의 무장 세력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폭발물 설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푸틴이 이끌던 연방보안국 소속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 총리직에 올랐던 1999년 주택가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307명이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체첸 반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푸틴이 이끌던 연방보안국 신분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 총리직에 올랐던 1999년 주택가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307명이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체첸 반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푸틴이 이끌던 연방보안국 신분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또 2002년 10월 체첸 무장 세력이 모스크바의 뮤지컬 극장을 습격해 850여 명을 인질로 삼았을 때 러시아 당국이 극장에 ‘정체불명의 가스’를 주입해 132명의 인질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밖에 2004년과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 2013년 기차역 테러, 20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테러 등을 언급하며 “푸틴은 테러 사건을 이용해 체첸 수도에 대한 공습을 정당화하며 해당 지역에서 전면전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외신들은 테러의 실제 배후와 무관하게 러시아가 이번 참사를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추가 징집 등의 구실로 삼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푸틴이 안보 정책의 대대적 변화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면, 이번 테러가 그 빌미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찰스 리치필드 부국장은 “분위기 반전의 확실한 경로는 (테러를) 우크라이나와 연관 짓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테러를 계기로 전장에서 공세의 고삐를 더 세게 쥘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아브디브카 인근 최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M101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아브디브카 인근 최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M101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이후 이틀째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으며 무력 대치를 이어갔다.

우크라이나는 테러 다음날인 23일 러시아에 강제합병된 크림반도 남부 세바스토폴 항구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 측 인사인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세바스토폴 시장은 이날 러시아 방공 시스템이 우크라이나 미사일을 대부분 격추했다면서 "여성 한명이 파편에 맞아 다치고, 사무실 건물과 가스관 등 기반 시설이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는 이튿날인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서부 도시 르비우에 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하며 반격했다. 세르히 폽코 키이우 군사행정청장은 우크라이나 방공군이 러시아의 미사일 수십발을 파괴했으며 현재까지 사상자나 피해 사항은 파악된 바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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