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IS는 “우리가 했다” 푸틴은 “우크라 관련”…테러 배후는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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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로커스 시청 콘서트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애도 기간이 선포된 가운데 하원인 국가두마 본청에 러시아 국기가 내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로커스 시청 콘서트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애도 기간이 선포된 가운데 하원인 국가두마 본청에 러시아 국기가 내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테러의 배후를 놓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연관성을 거듭 제기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처한 가운데서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에 미리 IS 테러 가능성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시아가 테러 방지 책임론을 피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관련설을 통해 전쟁 확대의 빌미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ISIS-K “이슬람과 싸우는 국가와의 전쟁 맥락”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22일(현지시간) 사건 직후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IS 전투원들이) 공격을 가해 수백 명을 죽이고 부상 입혔다”고 밝혔다.

하루 뒤엔 공격자 4명의 사진과, 범인 중 한 명이 여러 명의 희생자에게 총격을 가하는 90초 분량의 동영상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IS대원 4명에 의해 이뤄졌다”며 “이슬람과 싸우는 국가들과의 격렬한 전쟁에서 자연스러운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23일 핵심 용의자들을 체포한 뒤 “용의자들이 범행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다”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측과 관련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에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그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고 무기를 주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모든 가해자, 이 범죄를 지시한 사람들은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했다.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한 후 23일 러시아 비상상황부가 공개한 영상 속 현장 모습. EPA=연합뉴스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한 후 23일 러시아 비상상황부가 공개한 영상 속 현장 모습. EPA=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미국은 IS 소행임을 못박으며 우크라이나 배후설 차단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ISIS에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푸틴과 다른 인간쓰레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은 “모스크바 테러는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했다.

러, 미 사전정보 제공설에 “구체적 정보 없었다”

서방 언론들은 미국이 테러 가능성에 대한 사전 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한 뒤 발생한 테러라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NSC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러시아 당국에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경고와 관련, 대선 직후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명백한 협박”이라고 받아친 바 있다.

이를 두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푸틴 대통령이 자만심, 적(미국)이 생산한 정보에 대한 회의론,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미국의 경고가 나왔다는 시점 등 때문에 경고를 무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테러가 푸틴 대통령에게 위험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국민에 대한 안전 보장 약속이 이번 테러로 인해 훼손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책임론으로 화살을 밖으로 돌리며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촉구하는 강력한 결집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730만원 받기로 하고 사람 쏴”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검거 후 취조를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졌다. 연합뉴스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검거 후 취조를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졌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일부 용의자의 신문 모습으로 추정되는 영상도 러시아 매체 관계자의 텔레그램 등을 통해 공개됐다.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이 영상 속 한 남성은 신원 미상의 ‘전도사’라는 인물의 조수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지난 4일 튀르키예를 통해 러시아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돈을 위해 사람을 쐈다”며 애초 범행 대가로 50만 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튀르키예에서 무기 상점 정보를 받아 무기를 구했다고 한다. 그는 지시자로부터 “나중에 100만 루블(1461만원)을 주겠다”고 재차 약속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영상에 나온 남성은 당국자의 물음에 타지키스탄어로 답변했다. 러시아 내무부는 핵심 용의자 4명이 모두 러시아 시민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이들 가운데 일부가 타지키스탄 국적자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타지키스탄은 테러리스트들이 자국민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24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테러리스트에게는 국적도, 조국도, 종교도 없다”며 이처럼 말했다. 앞서 타지키스탄 외무부도 전날 자국민의 테러 연루설에 "가짜 보도"라고 부인했다.

“ISIS-K, 푸틴이 무슬림 피 묻힌다 비판해와” 

대테러 전문가들은 ISIS-K가 최근 몇 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다고 말한다. 푸틴 대통령이 체첸 등지에서 잔혹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소련 시절 아프간 침공 당시 무슬림을 상대로 잔학행위를 자행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반테러 연구기관 수판센터의 콜린 클라크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ISIS-K는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으며 선전매체에서 자주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그는 “ISIS-K는 러시아가 아프간, 체첸, 시리아에 개입한 것을 언급하면서 크렘린궁이 무슬림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는 누구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다. 호라산은 이란, 아프간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2015년 아프간 동부에서 발호해 극도의 잔혹행위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지난 1월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식에서 발생해 80여 명이 사망한 폭탄 테러도 이 단체 소행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이란 동남부 케르만의 ‘순교자 묘지’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념식 도중 발생한 폭발 현장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1월 이란 동남부 케르만의 ‘순교자 묘지’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념식 도중 발생한 폭발 현장 모습. AFP=연합뉴스

이들은 2022년엔 주아프간 러시아 대사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2021년 카불 국제공항 테러도 배후를 자처했다.

IS가 러시아를 공격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5년 이집트 시나이반도 상공에서 러시아 항공기가 추락해 대부분 러시아인인 탑승자 224명 전원이 사망했고, IS는 당시 소행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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