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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있어야 진짜 인디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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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지역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메리 챔프먼(69)은 최근 20명의 가족과 함께 지내던 축찬시 아메리칸 인디언 자치지역에서 쫓겨났다. 복잡한 혈통과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 자치지역에서 쫓겨난 인디언 수는 올해에만 250명에 이른다. 또 다른 400여 명은 혈통을 증명하라는 경고 편지를 자치당국으로부터 받은 상태다.

미 인디언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디언 자격을 잃고 자치지역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단 자격을 잃으면 자치당국이 제공하는 의료.교육.재정 지원 등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법에 호소해도 이를 뒤집을 수 없다. 자격 심사는 자치당국의 권한이라 연방이나 주의 행정.사법 기구가 조정에 나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 쫓겨나는 인디언들=지난달 29일 미 일간 USA 투데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선 1999년부터 지금까지 2000여 명이 자치지역 내 투표로 인디언 자격을 박탈당했다. 오클라호마주의 체로키 인디언 지역에선 26만 명 중 1000명의 자격을 박탈하고 내쫓는 선거를 할 예정이다. 자격을 잃는 사람의 대부분은 정파 간 세력 다툼에서 패배한 씨족 출신이거나 흑인 혼혈인이다.

자치당국들은 이 같은 추방의 원인이 혈통을 엄격히 심사하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돈 때문이라고 본다. 원인은 카지노로 인해 크게 늘어난 수입이다. 88년 미 의회가 도박이 합법화된 주에서는 인디언 자치지역 안에 카지노를 열 수 있게 하는 '인디언 게임산업법'을 제정했다.

현재 미국에서 인디언들이 운영하는 카지노는 36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의 전체 매출 규모는 서부 라스베이거스와 동부 애틀랜틱시티의 매출 합계를 넘어설 정도다. 이익의 3분의 1 정도는 해당 자치지역 인디언들에게 현금으로 나눠준다. 그래서 이를 노리고 혈통을 속이는 사람도 생겼다. 인디언 자치당국은 이 때문에 엄격한 자격 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 언론은 "인디언 사회가 과거의 가난이나 질병 대신 탐욕과 차별로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도박과 범죄 문제도 심각=사실 이들 자치지역의 카지노는 인디언 사회를 가난에서 탈출시켰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카지노 수입은 인디언 자치당국이 주민들에게 교육과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왔다.

하지만 개설 허가 절차가 허술해 문제가 많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자치지역이 아닌 대도시 인근 고속도로변에 카지노 개설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범죄 조직이 인디언 부족의 명의만 빌려 카지노 허가를 받아 운영하기도 했다. 카지노가 크게 늘면서 도박에 중독돼 거액의 빚을 지는 인디언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인디언 카지노를 둘러싼 부패와 범죄가 언론의 집중타를 맞자 미 의회는 올해 허가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쪽으로 인디언 게임산업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카지노 이윤을 둘러싼 인디언 간 갈등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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