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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3개뿐이던 日카페…12년 만에 해외지점까지 키운 비결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b.피셜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7일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가나 초콜릿 하우스.’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 가나 초콜릿의 팝업 스토어다.

단 한 달간의 팝업이지만, 매주 업계서 내로라하는 스타급 파티셰리와 바리스타팀이 합류해 최고의 디저트와 커피를 낸다. 그중 눈에 띄는 팀이 도쿄 오니버스 커피다. 지난 2017년 뉴욕타임스가 “도쿄에서 36시간을 보낸다면 이 커피숍을 빼놓을 수 없다”며 소개한 바로 그 커피숍이다.

지난 9일 서울 성수동에 정식 오픈한 '가나 초콜릿 하우스 시즌3' 팝업 스토어. 오는 4월 7일까지 운영된다. 사진 프로젝트 렌트

지난 9일 서울 성수동에 정식 오픈한 '가나 초콜릿 하우스 시즌3' 팝업 스토어. 오는 4월 7일까지 운영된다. 사진 프로젝트 렌트

가오픈 기간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카운터 바 한쪽에서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사카오 아츠시(坂尾篤史·41) 오니버스 커피 대표를 만났다. 오니버스 커피는 2012년 도쿄 오쿠자와에서 1호점을 연 뒤, 현재 일본 내 7개 지점, 호치민·타이페이·방콕 등 해외 3개 지점까지 확장한 일본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강자다.

현재 서울의 커피 시장은 그야말로 ‘불장’이다. 스타벅스·팀홀튼 같은 거대 글로벌 커피 프렌차이즈와 블루보틀·인텔리젠시아 등 유명 해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여기에 아메리카노 1500원을 내세운 저가 브랜드까지 가세, 작은 커피 브랜드의 생존율은 희박하다. 

반면 오니버스 커피는 도쿄의 작은 브랜드로 시작해 약 10년 만에 해외 지점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로컬 브랜드 생존의 선례로 삼을만하다. 사카오 대표에게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지켜온 비결에 관해 물었다.  

가나 초콜릿 하우스의 게스트 바리스타로 한국을 찾은 사카오 아츠시 오니버스 커피 대표. 초콜릿 디저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니버스의 스페셜티 커피를 낸다. 사진 박현아

가나 초콜릿 하우스의 게스트 바리스타로 한국을 찾은 사카오 아츠시 오니버스 커피 대표. 초콜릿 디저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니버스의 스페셜티 커피를 낸다. 사진 박현아

동네의 가치를 올려주는 커피숍

도쿄 오니버스 커피는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나카메구로 철길 카페’로 유명하다. 오래된 목조 가옥을 개조한 작은 카페로 2층에 올라가면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과 함께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어서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봄철 이곳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몰리는 인증샷의 성지가 되곤 한다. 사카오 대표도 “나카메구로 점이 없었다면 지금의 오니버스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벚꽃과 기찻길,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이름난 오니버스 커피 나카메구로점 전경. 사진 오니버스 커피

벚꽃과 기찻길,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이름난 오니버스 커피 나카메구로점 전경. 사진 오니버스 커피

그렇다고 오니버스의 모든 카페가 나카메구로점처럼 관광객이 북적이는 ‘인싸’ 카페는 아니다. 현재 도쿄에만 6곳에 매장을 운영하지만, 각 점포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를테면 지유가오카 지점은 햄버거 등의 브런치 등 식사를 내는 유일한 점포, 도겐자카점은 의자 대신 스탠딩 바를 둬 서서 빠르게 커피를 즐기는 주변 직장인들을 공략한다. 시부야 도심의 번화한 호텔 1층에 위치한 지점은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수제 맥주를 낸다.

지역마다 모두 다른 콘셉트의 점포를 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 장소를 지향한다. 사진은 도쿄 주택가에 위치한 야쿠모 점. 사진 오니버스 커피

지역마다 모두 다른 콘셉트의 점포를 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 장소를 지향한다. 사진은 도쿄 주택가에 위치한 야쿠모 점. 사진 오니버스 커피

사카오 대표는 “새로운 점포를 낼 때 해당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각각 다른 전략을 편다”며 “무엇보다 커피는 생활인만큼, 지역 주민들이 커피 한잔으로 생활이 풍요롭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이 오면 가벼운 안부라도 전할 수 있도록 적당한 친근함을 표현하자는 게 우리의 룰이고, 오니버스가 있기 때문에 근처로 이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카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카오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네의 가치를 올려주는 커피숍”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공공버스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다

지역의 거점이자 연결점이 되는 '공공버스' '버스정류장' 이라는 뜻을 이름에 담았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지역의 거점이자 연결점이 되는 '공공버스' '버스정류장' 이라는 뜻을 이름에 담았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오니버스는 포르투갈 어로 ‘공공버스, 버스 정류장’ 의미한다. 지역의 거점이 되어 사람들의 일상을 연결해주듯, 커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본래 아버지를 따라 건축 일을 하던 사카오 대표는 우연히 배낭여행 길에 호주의 카페를 들렀다가 커피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호주에서 바리스타와 손님이 가벼운 대화를 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2012년 3석 규모의 작은 점포를 내면서 주민들을 연결할 수 있는 카페를 꿈꿨지만, 첫 몇 년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처음 1년간은 거의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시피 했을 정도다. 다행히 당시만 해도 도쿄에 스페셜티 커피를 내는 곳이 많지 않았고, 약 2~3년 후 블루보틀 커피가 도쿄에 상륙하면서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 붐’이 일었다.

싱겁거나 산미가 강한 특징을 지닌 스페셜티 커피가 조금씩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때쯤, 오니버스도 2014년에 시부야 지점, 2016년에는 나카메구로 지점을 열었다. 지점을 넓혀가며 오니버스를 알릴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사람이었다. 사카오 대표는 “커피의 세계에 깊이 파고들면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이 됐고, 주변의 건축 일을 하는 사람, 맥주를 하는 사람으로 이어지면서 몇 년 정도 지나자 일이 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단순한 서비스보다는 환대를 지향, 커피와 함께 가능하면 손님에게 가벼운 대화를 건넬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단순한 서비스보다는 환대를 지향, 커피와 함께 가능하면 손님에게 가벼운 대화를 건넬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커피 지식 일본 내 No. 1”

오니버스가 단단한 로컬 커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커피에 대한 집념이 한몫했다. 약하게 볶은 맛있는 커피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활동했다. 일단 가까운 일본 내 커피 업계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뉴욕·멜버른·시드니·스웨덴 등 세계의 커피 인들을 게스트 바리스타로 불러 매장에서 브루잉 이벤트를 여는 등의 행사를 지속했다. 또 지난 2019년에는 한국을 찾아 ‘메쉬커피’나 ‘모멘토 커피’ ‘프릳츠 커피’와 같은 곳을 방문하고, 토크 이벤트 등에 참여했다.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아츠시 대표는 "올때마다 한국의 멋진 스페셜티 커피점에 방문한다"며 "가치관이 비슷하고 비전 공유가 가능한 동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 박현아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아츠시 대표는 "올때마다 한국의 멋진 스페셜티 커피점에 방문한다"며 "가치관이 비슷하고 비전 공유가 가능한 동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 박현아

사카오 대표는 “얼마 전에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바리스타 이벤트에 다녀왔다”며 “직원들에게도 로스팅 및 추출 대회에 나가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브랜드의 성공 비결로 커피의 퀄리티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일본 내에서도 커피에 대한 지식만큼은 톱”이라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커피로 도시와 생활을 풍요롭게

그는 오니버스라는 브랜드를 설명하는 세 가지 축으로 ‘퀄리티 높은 커피’ ‘서비스가 아닌 환대’ ‘지속 가능성과 사회 공헌’을 꼽는다. 특히 지속 가능성은 현재 사카오 대표가 가장 공들이는 분야다. 커피도 엄연한 농산물인지라, 진지하게 파고들어 가다 보면 노동 문제나 빈곤 문제에 닿을 수밖에 없다.

커피 생두 생산자와의 깊은 교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커피 비즈니스를 위한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커피 생두 생산자와의 깊은 교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커피 비즈니스를 위한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그는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까지 포함해 커피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다”며 “생두를 구매할 때도 무턱대고 낮은 가격으로 협상하는 식의 착취와 기만을 경계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케냐·온두라스·르완다·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에 방문해 직접 커피콩을 구매하고 생산자를 위한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의 커피 농장과 함께 유기 비료 만들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비료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최근에는 르완다의 커피 생산지에 방문, 비족한 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최근에는 르완다의 커피 생산지에 방문, 비족한 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오니버스 커피

창업 당시 ‘커피로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던 소망은 약 12년이 흘러 확신으로 바뀌었다. 사카오 대표는 “카페나 커피숍이 있음으로써 생활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말을 최근에는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대만·태국에 이어 한국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비전이나 가치관이 좋은 파트너사가 있다면 서울에도 매장을 꼭 한번 내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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