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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주처무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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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호 35면

민감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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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개봉한 대만 영화 한 편이 중국을 흔들고 있다. 제목은 ‘주처제삼해(周處除三害).’ 실재 인물인 주처(周處, 236~297)가 세상의 해악 셋을 제거했다는 역사 기록이 모티브다. 영화는 흉악한 살인범이 3개월 시한부를 통보받고 자수를 결심했으나 지명수배 3위임을 알고 1·2위 악당을 처리한 뒤 자수해 처형당한다는 스토리다. 요즘 중국 영화가 다루지 못하는 폭력·섹스·개인숭배 등 민감한 내용이 담겼다. 흥행 성적이 놀랍다. 17일 만에 5억 위안(928억원)을 돌파했다. 중국에서 개봉한 역대 대만영화 흥행 1위였던 ‘모어댄 블루’의 6.81억 위안(1265억원)을 깰지 관심사다. 넷플릭스도 지난 1일 영어 제목인 ‘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 (돼지와 뱀과 비둘기)’ 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만에 날을 세우던 중국 당국도 흥행을 반긴다. 지난 13일 한국의 통일부 격인 대만판공실 대변인이 극찬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동포는 같은 문자를 쓰는 같은 민족(同文同種)이다. 서로 공감이 쉽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주처는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이다. 후한(後漢)부터 동진(東晉)까지 유명 인물의 일화를 엮은 『세설신어(世說新語)』 가운데 스스로 갱신한 일화를 담은 ‘자신(自新)’편에 나온다. 주처는 젊은 시절 성정이 사나워 사람들로부터 ‘재난’ 취급을 당했다. 물에는 이무기, 산에는 호랑이, 마을에는 주처가 출몰한다며 주처와 이무기, 호랑이를 묶어 삼횡(三橫)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런 주처가 어느 날 호랑이와 이무기를 차례로 무찌르고 개과천선한 뒤 벼슬길에 올랐다고 사서는 전한다. 영어 제목은 불교에서 착안했다. 영화 속 범죄자를 각각 탐진치(貪嗔痴), 즉 탐욕·분노·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동물인 돼지·뱀·비둘기에 비유했다.

영화를 본 중국인들은 “주처는 해롭지 않다”며 ‘주처무해(周處無害)’를 외친다. 중국 개봉판은 검열 문턱을 넘기 위해 중화민국 국기를 지우고, 민국 연호를 가렸다. 가위질에 불만인 관객은 “넷플릭스판을 봐야 한다. 중국판엔 알맹이가 없다”고 SNS에 썼다. 가위질당한 버전을 ‘내시판(太監版)’이라 비꼬기도 했다.

대만 신문은 연일 흥행 이유 분석에 바쁘다. 중국 영화가 “이전에는 한국 영화만큼 못 찍었는데, 이제는 대만 영화에도 뒤처졌다”는 평가도 등장했다. 영화계의 ‘주처’를 관객이 더 갈망하는 요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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