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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부임 11일 만에 귀국…‘이종섭 구하기 회의’ 급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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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귀국했다. 출국 11일 만이다. 정부는 이 대사의 귀국 이유를 ‘방위산업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악화되자 이 대사를 귀국시키면서도 여론 때문은 아니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급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입국한 이 대사는 입국장에서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 협력과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와 일정 조율이 잘 돼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사가 언급한 회의는 오는 25일부터 호주·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인도네시아·카타르·폴란드 등 6개국 대사가 참석하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다. 외교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내 “현지 정세와 시장 현황, 기업들의 기회 요인, 장기적인 시각에서 수출 수주 여건, 정책적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정 현안이나 급박한 정세 변화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일부 공관장을 불러 모으는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소집 방식과 시기를 두고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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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와 국방부는 지난해 9월 중동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권역별 방산수출 네트워크 회의’를 개최했는데 당시 공관장들은 귀국 대신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석했다. 게다가 연례 재외공관장회의가 다음 달 22일 개최된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달도 채 안 남은 공관장회의 때 회의를 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공관장회의 당시 방산 관련 60여 개국 대사들이 따로 모여 ‘방산물자 수출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외교부는 예산 부족으로 최근까지 험지 근무 재외공관원들을 대상으로 연 1회 실시하던 의료 목적 귀국도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출장비 고갈 문제를 겪고 있다.

이번 회의는 날짜만 공개됐을 뿐, 개최 장소나 일정, 구체적인 의제는 모두 비공개다. 또 외교부는 보통 장차관 주요 일정만 사전 공지하는데, 이번 회의는 이례적으로 개최 닷새 전에 보도자료를 냈다. 공교롭게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이 대사가 곧 귀국할 것”이라고 밝힌 뒤 30분 후다.

이날 이 대사는 이번 회의 참석 후 다음 주에는 “한·호주 ‘외교·국방장관 2+2 회담’ 준비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호주 2+2 회담은 4월 말~5월 초에 열릴 예정인데, 관례상 개최지는 호주다. 대사로서 주재국에서 한창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이래저래 호주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야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새벽 5시부터 공항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재명 대표는 “오늘 이 대사가 ‘도둑 입국’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이 대사를 해임하고 출국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여당은 공수처를 겨냥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의 뜻을 어떻게든 좇아보려는 국민의힘의 뜻으로 이 대사가 귀국했다”며 “아직 수사 준비가 안 됐다면 이는 공수처와 민주당이 정치질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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