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진국은 정부 주도 산업정책 올인, 우리도 뒤처지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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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 세계 신규 도입된 신규 산업정책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Juhasz et al. 2023, 『The New Economics of Industrial Policy』]

전 세계 신규 도입된 신규 산업정책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Juhasz et al. 2023, 『The New Economics of Industrial Policy』]

미국, 자국 반도체 업체 인텔에 26조원 보조금

‘대기업 특혜’란 낡은 프레임 벗어나야 할 시대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지원해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키운 원동력이었다. 자원 빈국 한국을 중화학공업 수출 강국으로 키우고 반도체를 포함해 정보기술(IT) 대국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변해 왔다. 1990년대 자유무역과 시장주의를 앞세운 ‘워싱턴 컨센서스’가 부상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개발연대의 산업 육성책은 한물간 역사의 산물로 치부됐었다.

그러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최근 그 분위기가 다시 달라졌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공급망이 중요해지면서 자국 위주의 산업정책이 다시 중요해졌다. ‘자유무역 지킴이’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존재감을 잃고 있다. 특히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영토 안에 배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에 최대 195억 달러(약 26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반도체법에 따른 미국 정부보조금(527억 달러)의 3분의 1을 인텔이 가져간다. 미국에 투자한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받는 각각 60억 달러와 50억 달러의 보조금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삼성·TSMC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게 생겼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의 산업정책 회귀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총아’였던 국제통화기금(IMF)도 인정한다. IMF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2500개가 넘는 산업정책이 쏟아졌다. 과거엔 주로 개도국이 주도했던 산업정책을 이젠 선진국들이 앞장선다. IMF는 “지난해 전체 산업정책의 48%가 미국과 유럽연합(EU)·중국에서 나왔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공급망 붕괴, 탈(脫)탄소화 등으로 산업정책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도 뒤늦게 산업정책을 다듬고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정책 반성문’을 썼었다. 2018년 말 산업통상자원부의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는 있지만 속도전을 펼치는 경쟁국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잖다. 법인세를 깎아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지난해 말 만료됐고,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에 혜택을 주는 K칩스법은 올해 말 종료된다. 다행히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인허가 신속처리 등 K칩스법 강화를,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말 종료되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의 대기업 투자에 대한 법인세 공제 일몰기간을 연장하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 특혜’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산업정책 반성문’을 다시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