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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한 충돌’ 속히 일소하고 ‘예측 가능한 정권’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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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황상무·이종섭 리스크 해소로 급한 불 껐지만

대통령·여당 앙금 여전…못 풀면 공멸 불 보듯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어제 자진 사퇴했다.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조치다. 대통령 핵심 참모가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회칼 테러’ 운운하며 언론에 대한 겁박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발언을 했는데도 대통령실은 그의 거취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는데도 “사과했으니 됐다”며 일축했다. 그러다 여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정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자 엿새 만에 사표 수리로 봉합한 형국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오른 와중에 출국해 논란을 빚어 온 이종섭 주호주 대사도 때마침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이날 밝혔다. 급한 불은 껐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안하다.

윤 대통령은 황 수석 사퇴 전날까지도 “사람 그리 쓰는(버리는) 게 아니다”며 유임을 고수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이 귀국을 촉구한 이 대사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소환도 안 했는데 왜 들어와야 하나”며 버티다가 귀국 요구 여론이 과반을 넘자 열흘 만에 마지못해 받아들인 모양새다.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도 윤 대통령 측과 한 위원장은 갈등하는 양상이라 우려를 더한다. 공천관리위원이자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은 호남 출신과 당직자들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며 그제 불만을 공개 표출, 한 위원장과 고성이 오갈 만큼 다퉜다고 한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놓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정면 충돌을 기억하는 국민으로선 ‘제2의 윤·한 충돌’이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 윤·한 갈등 수습에 실패하면 총선 패배는 불문가지다. 여권 분열에 자신감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벌써 과반 승리를 언급하며 ‘대통령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을 외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이제라도 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 위원장과의 갈등 실마리를 풀지 않으면 야당의 이런 주장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현 정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예측이 불가능한 정권’이라며 답답해 한다. 상식에 어긋나고 총선에 악재인 게 뻔한데도 대통령이 그런 방향으로 행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참모들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사소한 일로라도 국민 신뢰를 상실하면 정책의 동력은 금방 고갈되고, 남은 임기의 향배를 결정할 총선에서 패배하기 마련임을 대통령실은 각성해야 한다.

공수처 역시 이 대사가 귀국한 이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이 대사를 소환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당장 소환이 어렵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히는 게 총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차단할 길임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