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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여당이 매달릴 건 민심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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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수도권에서 유세하는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은 40대 유권자만 보면 철렁한다. “너희 안 찍는다”는 적의에 찬 표정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50대도 절반은 비슷하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20대 남성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날 선 표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이 4년 전 총선과 판박이가 될 공산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석권하고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103석에 그쳐 사상 최악의 참패를 한 그때와 민심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게 국민의힘 후보들의 전언이다. 19일 자정께 지역구를 종일 돌고 귀가한 수도권 여당 현역 의원 후보에게 전화했다.

수도권 분위기 싸늘, 여 후보 긴장
독선 이미지 대통령실도 리스크
“의정갈등 피로감…타협점 찾아야”

돌아다녀 보니 어떤가.
“민심 이반이 정말 심해…. 이 기조로 가면 4년 전 총선처럼 민주당이 180석, 어쩌면 그 이상 먹을 수도 있다.”
민주당도 악재(이재명 사천 파동)가 있지 않나.
“유권자들은 거기(민주당)보다 우리(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더라. 비명 탈당파들이 무소속 출마하면 민주당 표 갉아먹을 것 아니냐고? 많이 못 먹어. 유권자들, 그쪽에 관심 없더라.”

“야당보다 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면 그 핵심이 뭐냐”고 캐물었다. “대통령실”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이다. “거리에서 만난 이들에게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심각한 게, 대통령 욕하는 거다. ‘반드시 심판하겠다’는데 섬뜩하더라. 황상무 막말도 문제지만, 이종섭 도피 논란이 크더라. 대사 부임을 도피성 출국으로 규정한 민주당 덫에 완벽히 걸려들었다. 채 상병의 순직을 안타까이 여기는 민심에 불을 붙인 측면도 있다. 조국 신당의 약진도 의외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악재임은 분명하다.”

여론조사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도 “최근 여당 지지율이 올랐다가 떨어진 건 민주당 공천 파동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걷히면서 정권심판론이 재부상한 때문이라 보면 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열흘 전 민주당을 10%포인트 넘게 따돌리며 피크에 올랐을 때조차 승리 가능한 지역구의 최대치는 135곳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구 의석 254석의 근 절반인 122석이 걸린 수도권 인구 구성이 여당에 워낙 불리하기 때문이다. 30·40세대가 많아졌는데 40대는 워낙 반(反)여당 성향이 강하다. 20·30대는 반여당 성향이 덜하지만, 40대처럼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데다 여성들은 세대 불문하고 야 당 지지층이 두배 많단다. 그나마 20·30대 남성들이 여야를 반반씩 지지하니까, 이준석 전 대표가 여성을 포기하고 이 세대 남성들에 접근하는 갈라치기 전법을 써서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여성 표심에선 더 멀어졌고, 남성들도 채 상병 수사 외압 논란 등 지난 2년간 정부의 헛발질로 인해 정권에 등 돌린 이들이 늘면서 여당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5차례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 빼곤 다 참패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 국민의힘에겐 패배밖에 남은 길이 없을까. “아니다”라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야당도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 중도층이 싫어하는 악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민심을 따르고, 누가 덜 더럽냐는 경쟁에서 민심을 붙잡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선 패배 시 대통령 탄핵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힘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충고는 없다.

대통령실이 황상무 수석 사퇴와 이종섭 대사 귀국을 결단한 20일 낮. 서울 강북권의 국민의힘 후보에게 “분위기 어떤가”하고 물어보았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어제까지 ‘황상무 사퇴 안 시키면 너희 다 죽어’라고 소리치던 분들 표정이 달라졌다. ‘그거라도 해 다행이다’며 손을 잡아주더라. 물가도 너무 올라 걱정했는데 정부가 나서니까 반전이 생기더라. 나흘 전쯤 민주당이 내 지역구 사무실 앞에 ‘사과 한 개 5000원!’이란 현수막을 붙였는데, 오늘 떼버리더라. 사괏값이 조금 떨어지니까 할 말이 없어진 거다.”

민심은 권력 하기에 달렸다. 무시하고 버티면 철퇴를 내리지만, 존중하고 껴안으면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그 점에서 여당이 특히 명심할 것이 있다. 장기화한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 불안 해소다. 필자가 인터뷰한 여당 후보 4명은 입 모아 말했다.

“대통령이 의사 늘리는 데는 다들 찬성한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너무 오래 끈다는 피로감, 동네 의원도 못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크다고 만나는 유권자마다 아우성이다. 이제는 타협해 정부도 의료계도 윈윈하는 결과를 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