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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페널티' 박용진 끝내 '비명횡사'…정치권 "지고도 이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경남 김해 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경남 김해 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강북을 전략경선 개표 결과 조수진 변호사가 비명계 박용진 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받았다. 경선은 전국 권리당원 투표 70%, 강북을 권리당원 투표 3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박범계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은 19일 저녁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 같은 개표 결과를 발표하며 “공개할 수 없지만 상당한 정도의 득표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경선 시작 전부터 결과는 예견됐다. 의원평가 ‘하위 10%’로 분류된 박 의원엔 득표율의 30%를 깎는 페널티가, 조 변호사에게는 25%를 더하는 여성·신인 가산점이 붙었다. 박 의원이 64.2% 이상을 얻어야 이길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에 전국의 권리당원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점도 박 의원에겐 불리한 지점이었다.

경선에서 패한 박 의원은 3선 고지를 밟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용진이 지고도 이겼다”(야권 관계자)는 반응이 나온다. 박 의원의 탈락이 민주당 ‘비명횡사’ 공천의 결정적 장면으로 부각되고, 이재명 대표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면서 그의 정치적 무게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박 의원의 공천 탈락을 그간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행보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 의원은 2021년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의혹 등을 지적하며 TV토론마다 맞붙었고, 2022년 8월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와 경쟁했으나 21.8% 득표에 그쳐 낙선했다. 이후에도 사당화(私黨化) 논란과 인천 계양을 ‘셀프 공천’ 논란을 앞장서서 제기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아픈 곳만 골라서 때리는 박 의원이 공천장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공천이 취소된 정봉주 전 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공천이 취소된 정봉주 전 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런 관측은 강북을이 민주당 공천 파동의 핵심 지대로 떠오르며 현실화됐다. 친이재명계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1월 박 의원을 겨냥해 “내부 총질하는 민주당답지 못한 의원”이라고 비판하며 자객 출마를 선언했고, 강성 권리당원들은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뜻) 탈락’을 외치며 정 전 의원을 거들었다. 결국 박 의원은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국민 ARS 여론조사에서 모두 과반을 얻고도 ‘30% 감산’ 페널티로 패배했다.

‘목발 경품’ 막말 논란으로 지난 14일 정 전 의원 공천이 취소되면서 차점자 박 의원을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빗발쳤지만, 이 대표는 “1등이 문제 됐다고 차점자가 우승자가 되진 않는다”(16일)며 다른 지역과 달리 재(再)경선을 고수했다. 당 지도부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강북을 경선을 전국 권리당원 70%, 강북을 권리당원 30% 투표로 진행한 점도 ‘박용진 찍어내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박용진 의원이 2021년 10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박용진 의원이 2021년 10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과정에서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핍박받는 안티테제(antithese·반대)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평가다. 한 의원은 “그간 박 의원이 ‘독고다이’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번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어 ‘비명횡사’의 희생양이 돼 체급이 두세 단계 수직 상승했다”고 말했다. 또 박 의원이 경선이 진행 중이던 18일 고향 전북을 방문하고, 19일 경남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면서 전국 행보를 벌인 것도 보폭을 키웠다는 평가다.

다만 박 의원의 정치적 그릇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당내 입지가 약한 박 의원이 확장력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 중진의원은 “정치 리더로서 야권의 반(反)이재명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평했다. 박 전 의원은 개표 발표 직후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영화 ‘트루먼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민주당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결과에 승복했다.

반면 이 대표는 자신의 반대파를 죄다 잘라냈다는 정치적 부담을 다시 떠안게 됐다. 공천 파동의 첫 뇌관이었던 임 전 실장이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배제된 데 이어 박 의원까지 불공정 경선 논란 속에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당 운영을 통해 박 의원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확실하게 만들겠다”(2022년 8월 전당대회)는 자신의 발언을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한 것도 향후 부담으로 거론된다.

서울 강북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조수진 변호사(오른쪽). 왼쪽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쳐]

서울 강북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조수진 변호사(오른쪽). 왼쪽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쳐]

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로 확정된 조수진 변호사는 이날 승리 직후 “이 대표 중심으로 뭉쳐 총선 승리의 길로 가겠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2010~2012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의원실(당시 민주노동당) 보좌관을 지냈으며,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이날 이 대표는 성남 모란 오거리 광장 유세에서 “여러분 강북을 선거 결과가 궁금하죠”라며 개표 결과를 공개했다. 이 대표는 “강북을 권리당원 투표(득표율)는 조 후보가 53.75%, 박 후보가 46.25%였고, 전국 권리당원 투표는 조 후보 76.85%, 박 후보 23.15%였다”고 밝혔다. 이어 “가ㆍ감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영하면 조 후보 69.93%, 박 후보 30.08%였고, 가ㆍ감산을 반영하면 조 후보 80.6%, 박 후보 19.4%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압도적 차이로 후보가 결정됐으니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자”고 했다. 이번 당 경선 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개표 결과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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