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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 폭탄 부른 '文정부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 결국 폐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2035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계획)’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스물한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과거 정부가 공시가격을 매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시행해 곳곳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드러나고, 국민 고통만 커졌다”며 “무모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스물한 번째,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스물한 번째,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이 계획을 내놓고 이듬해 공시가격 산정부터 적용했다. 공시가격은 시세에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반영해 정하는데, 로드맵 도입 이후 집값 급등에, 현실화율 상승까지 더해지며 공시가격이 급등해 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실제 2021년 로드맵 도입 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연평균 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국토교통부) 문재인 정부 5년간 63%가 올랐다.

실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의 경우 2019년 336만원이던 보유세(재산세+종부세)가 2021년 683만원으로 2배 이상 급등했다. 마포구 아현동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은마아파트’를 보유한 2주택자의 보유세 역시 2020년 3058만원에서 2021년 8703만원으로 치솟았다. 이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시세 변동을 고려하지 않아도 재산세 부담이 61% 증가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동주택 공시가 현실화율 계획.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공동주택 공시가 현실화율 계획.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에 윤석열 정부는 국민 세 부담 완화를 위해 지난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문재인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만들기 전인 2020년 수준(공동주택 평균 69%)으로 되돌리면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았다. 올해도 현실화율을 지난해와 동결하면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국 1.52%, 서울 3.25%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아파트값 반등으로 서울 송파구·양천구 등 일부 자치구 아파트 단지의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많게는 30% 이상 오른 곳도 있지만, 보유세 부담은 2021~22년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정부는 현실화율 로드맵이 폐지되면 조세·부담금에 따른 국민들의  부담이 대폭 줄어들고, 기초생활보장 등 각종 복지제도의 수혜대상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현환 국토부 1차관은 “(현실화 계획 폐지는) 현실화율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적어도 현재의 시세반영률 수준(공동주택 69%)을 넘지 않도록 설계할 것이 때문에 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하지만 앞으로 시세반영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의 산정 방식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진 차관은 “현재 국토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용역을 통해 시세반영률 등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 결과를 반영해 올해 7~8월께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조세의 공평 부담 측면에서 현재 시세의 60~70% 수준인 공시가격과 시세의 차이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줄이느냐가 과제”라고 설명했다.

현재 지역별·유형별·가격대별로 현실화율이 달리 적용되고 있는 것도 향후 개선해야 할 과제다. 30억원이 넘는 고급 단독주택의 시세반영률은 40~50% 선에 그치고, 1억~2억대의 지방의 소형주택은 70∼80%로 책정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 제기는 로드맵 도입의 배경이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균형성과 형평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토지나 단독주택 등 거래 빈도가 낮아 시세 관측이 어렵고, 시세의 변동성이 큰 부동산의 경우 현실화율을 높게 잡기 어렵다”며 “부동산 유형에 따라 현실화율을 차별화하는 것보다는 (가장 낮은 수준인) 50~60% 선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로드맵을 실질적으로 폐지하기 위해서는 '시세반영률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부동산공시법(26조의2)을 개정해야 하는데,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토부는 총선이 끝난 뒤 새로운 국회가 개원하는 오는 6~7월경 개정안을 발의하고, 내년 공시가격 산정방식이 결정되는 11월 전까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 등으로 계획과 달리 개정안 처리가 늦어질 경우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현실화율을 적용하는 등의 대안도 준비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법 개정 전이라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폐지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세 부담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선거 개입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지난해 말 세법 개정이나 예산안 통과 시점에 발표했다면 정책의 취지가 국민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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