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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정 갈등 한 달…대화 바라는 여론 변화에 주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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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이 지난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이 지난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2000명 증원 고수 47%, 규모·시기 조정 41%로

의대 증원 자체 찬성이나 ‘중재안 필요’ 적잖아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을 맞았다. 의료계와 정부는 여전히 강 대 강으로 맞서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의·정 갈등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다. 특히 중증 환자와 그 가족의 불안감과 피로감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의료계와 정부가 하루빨리 대결을 멈추고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여론의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대해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7%, ‘규모나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41%였다.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6%)까지 고려하면 정부 원안대로 추진하자는 의견과 그렇지 않은 의견이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선 여전히 찬성(88%)이 압도적이지만 증원 규모로 2000명을 고수하지 말고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자 역시 적지 않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선 종합병원 의료 공백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잘못했다’(49%)는 평가가 ‘잘했다’(38%)를 웃돌았다. 물론 현재의 의료 공백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한꺼번에 사직서를 내고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이는 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지만 정부의 국정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현실도 심각하게 봐야 한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면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할 것이란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그렇다면 정부로선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 이런 대비도 없이 정부가 무조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라도 의료계와 정부는 열린 태도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꼬여 있는 대화의 실마리를 풀려면 정부가 먼저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한 모든 의제가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어제 CBS라디오에 출연해 “그 의제(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오픈돼 있다”고 언급했지만 그 정도론 충분치 않다. 진정 대화의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좀 더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의료계도 원점 재검토 요구를 철회하고 의대 증원 논의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정부가 제시한 2000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규모의 증원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의료계와 정부 양측 모두 국민 건강권 보장을 최우선에 두고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를 논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