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가운데)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가운데)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종섭·황상무 정리하자는 한동훈 요구 외면

여당조차 부글부글…겸손하게 민심 수용해야

이종섭 주호주 대사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대통령실은 어제 아침 입장문을 통해 “이 대사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며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실은 황 수석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 철학”이라고 밝혔다.

전날 저녁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 대사 즉각 귀국과 황 수석의 거취 결단을 요구하자 대통령실이 곧바로 반박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실의 시각은 이 문제를 지켜봐 온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 아무리 대통령실 자체 검증에선 문제가 없었다지만 공식적으로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공직에 발탁했던 게 온당한지,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드러나자 법무부가 신속히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은 특혜가 아닌지, 이 대사가 왜 ‘도주 대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쫓기듯 비행기를 타야 했는지 대다수 국민은 사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국민의힘에서조차 이 대사 귀국론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잘못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국민들은 도피성 대사 임명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도 “빨리 귀국해 수사받는 게 좋다. 해임 문제를 포함해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제에 공수처도 곧바로 이 대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

황 수석 문제도 버틴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지금 여야는 중도층을 붙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망언 후보’들의 공천을 취소하고 있다. 10여 년 전의 발언도 소환되는 판이다. 그러니 황 수석의 ‘횟칼 테러’ 발언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조속한 거취 정리 요구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은 “대통령실이 도움은 못 줄망정 뒷다리를 붙잡는다”며 아우성이라고 한다. 이번 총선 결과가 윤석열 정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대통령실이 엄중한 인식이 있다면 이리 머뭇거릴 틈이 과연 있겠는가.

지금 대통령실은 상대의 잘못엔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기편의 과오엔 관대하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제라도 이번 논란을 겸허히 성찰하고, 민심을 수용해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에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