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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통계조작과 정치감사 사이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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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현재 스코어로 정확히 반타작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작성 실태에 대한 지난해 9월 감사원 감사 결과와 지난주 대전지검 수사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물론 아직 법원의 판단은 남아 있다.

지난해 감사원은 전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4명(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은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 범죄행위가 ‘확인된’ 이들이라고 적시했다. 통계청장 외에 통계청 공무원 4명도 여기에 포함됐다.

검찰, 감사원 요청의 절반만 기소
소득 통계는 7명 중 1명만 재판에
검찰 제언이 정책 개선에 더 도움

검찰 수사 결과는 사뭇 달랐다. 대전지검은 김수현·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장관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장하성·이호승 전 실장과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 통계청 공무원 4명 등 11명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 요청한 22명의 절반이다.

감사원이 ‘확인한’ 범죄행위를 검찰은 왜 확인하지 못했을까. 국가 통계의 근본을 뒤흔든 전 정부의 잘못을 검찰이 봐줬을 리는 없다. 검찰 스스로 ‘최초의 통계법 위반 수사·기소’라고 의미를 부여할 만큼 주요 사건이었다.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윤성원 국토부 전 차관 등 관료 2명에 대해 두 차례나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것을 보면 집값 통계 조작의 청와대 연결고리를 더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사원과 검찰 발표에서 달라지지 않은 점은 집값 통계 조작이다. 청와대가 한국부동산원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최소 94회 이상 통계를 조작하게 했다는 감사원 발표는 검찰 수사에서 125차례 조작으로 늘어났다. 부동산원은 사전 보고가 부당하다며 12차례에 걸쳐 중단을 요청했지만 김상조 전 실장이 “사전 보고를 폐지하면 부동산원 예산이 없어질 텐데, 괜찮겠냐”고 압박했다는 내용도 새로 나왔다.

반면에 가계소득 통계는 차이가 났다. 자료 순서부터 달랐다. 감사원은 가계소득, 고용 순이었지만 검찰은 고용, 가계소득 순으로 발표했다. 중요도가 달라진 거다. 검찰은 소득 통계와 관련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식별정보가 포함된 통계 기초자료를 제공받은 홍장표 전 경제수석 한 사람만 기소했다. 감사원이 통계청 공무원 넷을 포함해 모두 7명을 검찰에 넘겼음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전임 정부 마지막 통계청장을 지낸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대학신문에 ‘통계청에 의한 통계조작 있었던가’라는 글을 올렸다. 소득 통계의 원자료인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표본 개편과 가중치 부여 자체는 통계조작이 아니다”고 썼다. 검찰도 그렇게 본 것 같다. 정책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법의 잣대로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감사원 발표보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검찰 발표가 더 돋보인 대목이 있었다. 검찰은 집값 통계조작으로 국민은 시장 상황을 오판하게 됐고 국토부 예산 368억원이 허비됐다고 지적했다. 국가 통계가 무용지물이 됐으니 거기에 쓴 세금이 낭비된 것은 맞다. “정확한 국가 통계는 정부정책 수립의 근간이자 사회 구성원의 각종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공공자원이므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중립적으로 작성돼야 함”이라는 검찰 발표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돼 있는 현행 통계법의 벌칙 규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고개를 끄떡이게 했다. 두 기관의 발표문만 보면 검찰이 정책감사에 신경 쓰는 감사원 같고, 감사원은 법전 펴놓고 단죄하는 검찰 같다. 검찰 지적이 향후 정책 개선에 더 도움이 되겠다.

지난해 감사원 발표 직후 ‘통계조작과 정치감사 사이’라는 칼럼에서 진실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썼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