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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후질 수밖에"…건축가들, 시흥시 공모전 보이콧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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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문화원 설계 공모전 당선작 조감도. 당선자는 시와 1년 넘게 공사비 갈등을 빚다 계약해지 당했고, 시는 설계 공모전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시흥시 문화원 설계 공모전 당선작 조감도. 당선자는 시와 1년 넘게 공사비 갈등을 빚다 계약해지 당했고, 시는 설계 공모전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가 재추진하는 문화원 건립 공모전과 관련해 건축가들이 보이콧에 나섰다. 1000여명의 건축가가 소속된 국내 건축계의 주요 단체인 새건축사협의회는 17일 “소임과 책임을 회피한 채 설계자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시흥시를 규탄하며, 발주처와 건축가가 상생ㆍ협력할 수 있는 건축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시흥문화원 건립 설계 공모’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축계가 공공 발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집단 보이콧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건축계 이례적 집단 성명 발표 #"시흥시 공모전 참석 안 해"

시흥시는 지난 11일 장현동 시청사 인근에 건립을 추진 중인 문화원 건축설계의 제안 공모를 한다고 재공고했다. 시는 2022년 똑같은 공모전을 열어 당선자를 뽑았지만, 당선된 건축가와 1년 반이 넘도록 공사비 관련 갈등을 벌이다 지난해 10월 계약을 해지했다. 여기에 더해 당선자가 향후 5개월간 관급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도록 부정당 업체로 지정하는 제재도 했다.

당선자는 “다시는 공공건축 공모에 참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흥시의 갑질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흥시 측은 “건축가의 계약의무 불이행으로 계약해지가 돼서 행정처분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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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에서는 공사비 갈등 탓에 프로젝트가 파행을 겪었다고 본다. 시흥시가 건물의 특성과 규모 대비 공사비를 너무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흥 문화원 기획 설계안의 타당성을 검토한 국책연구기관(건축공간연구원)에서 공사비를 3.3㎡당 848만원에서 최소 1218만원으로 늘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공사비는 시가 책정한 72억원에서 106억원으로 늘어나야 한다. 건축공간연구원은 문화원이 단순한 동사무소 건물이 아니라 대형 컨벤션홀이 들어가는 문화ㆍ집회시설인 만큼 그에 준해 공사비를 책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공공건축물, 후지게 지어지는 이유

하지만 시흥시는 이 사전검토를 받고서 시에서 구성한 공공건축심의위원회를 거쳐 72억원의 공사비를 확정시켰다. 그리고 설계 공모전을 공고할 때 안을 또다시 바꿨다. 건물 규모를 기존 3층에서 5층으로 더 키운 안이었다.

시흥시가 당초 기획한 문화원의 모습. 3층 규모다.

시흥시가 당초 기획한 문화원의 모습. 3층 규모다.

심의 통과 후 갑자기 바뀐 기획안. 3층이 5층으로 늘어났지만 공사비는 그대로였다.

심의 통과 후 갑자기 바뀐 기획안. 3층이 5층으로 늘어났지만 공사비는 그대로였다.

건물 규모는 더 커졌지만, 공사비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시가 층수를 늘리는 과정에서 늘어난 연면적을 실제보다 줄여 공모전을 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흥시는 “사전검토는 가이드라인일 뿐이고, 층수가 달라져도 건물 용도나 면적이 바뀌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것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새건축사협의회 측은 “시흥시가 공사비 예산을 정하는 기획과정에서 적정하게 예산 수립을 하지 않아 사업의 추진이 어려워졌는데도 당선된 설계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계약해지와 소송을 진행하고, 해당 사업에 대한 설계 공모를 재공고했다”고 주장했다.

시흥시는 이번에 문화원 건립을 다시 추진하면서 공사비를 91억원으로, 처음보다 19억원 늘려 공고했다.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 회장(가온건축 대표)은 “시흥시 문화원 공모전 건은 우리나라 공공건축물이 왜 후지게 지어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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