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부·명예 쌓는 직업 아니다, 환자와 가까이 있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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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28면

이두익 백령병원장

이두익 백령병원장이 지난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 김안드레아병원 옛터의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 섰다. 백령병원의 전신인 이곳은 1970년대 화재로 전소했고, 여러차례 주인이 바뀐 후 2001년 인천광역시의료원 산하가 됐다. 이 원장은 2014년 신축 재개원과 함께 취임했다. 최기웅 기자

이두익 백령병원장이 지난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 김안드레아병원 옛터의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 섰다. 백령병원의 전신인 이곳은 1970년대 화재로 전소했고, 여러차례 주인이 바뀐 후 2001년 인천광역시의료원 산하가 됐다. 이 원장은 2014년 신축 재개원과 함께 취임했다. 최기웅 기자

스물다섯. 그리고 일흔여섯. 의사는 그렇게 나이테가 겹겹이 쌓일 동안 그 섬을 잊은 적이 없다.

백령도.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싣고 꼬박 4시간을 가야 만나는,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이자 북한 장산곶과 불과 12㎞ 떨어진 섬. 이두익(76) 백령병원장이 그곳에 있다. “육지 생활이요? 아쉽지 않습니다. 뭍으로 들어갔다가도 이 섬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핸드폰 너머 이 원장의 목소리를 접하기만 했을 뿐, 풍랑은 백령도로 향하는 뱃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를 만난 건 첫 전화를 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12일 오전 8시30분이었다. 1만1000여 명의 전공의가 파업에 들어간 뒤 정부가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944명에게 행정처분 사전통지를 했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백령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이구 허리야. 제때 치료를 받았으면 이렇게 고질병이 안 됐을 텐데.”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는 백령도 토박이 장금자(82)씨가 허리를 잔뜩 굽히며 마취통증의학과 순서를 기다렸다. 이 병원 노인 환자의 비율은 65~70% 수준인데, 이른바 빅5 병원에 속하는 서울아산병원 고령 환자 비율(평균 40%대)을 훌쩍 뛰어넘는다. 섬의 고령화 추세가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이두익 백령병원장이 12일 오전 마취통증의학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최기웅 기자

이두익 백령병원장이 12일 오전 마취통증의학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최기웅 기자

백령도 인구는 1만 명. 군인을 제외한 주민등록상의 인구는 4864명(2024년  2월 기준)이다. 이 중 25%인 1200여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초고령화 지역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백령병원은 섬 속의 생명수와도 같다. 장씨는 “원장님이 오신 뒤로는 병원 가느라 육지로 나갈 일이 없어졌어. 조금 일찍 오시지 그러셨어”라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2014년 백령병원장으로 부임했다. 2012년 인하대병원장으로 정년퇴임한 직후다. 백령병원은 인천광역시의료원의 분원인데, 이 원장이 오기 전에는 마취통증의학과가 없었다. 장씨처럼 근골격 질환을 앓거나 당뇨병·고혈압·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어르신들은 “삶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노인 환자분들이 고마워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환자분들이 진료실 문을 닫고 나가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할 때 저도 고마움을 느끼지요. 환자를 돌볼 때 의사는 가장 행복합니다. 그래야 하고요.”
젊은 시절에도 백령병원에서 근무하셨다지요.
“네. 1973년, 스물다섯이었습니다. 경희대 의대를 갓 졸업한 군의관이었죠. 오산공군작전사령부가 첫 근무지였습니다. 그런데 백령병원(당시 김안드레아병원) 군의관이 건강이 나빠 전출됐습니다. 오산 군의관 7명 중 미혼이 저 포함 둘 뿐이라 둘 중 가게 될 것 같더라고요. 차출되느니 기분 좋게 자원하자고 해서 갔습니다.”
당시 백령병원은 어땠나요.
“뱃길로 4시간 고생해서 오셨겠지만, 당시엔 18~24시간이 걸렸습니다. 응급상황에 주민들이 육지 병원에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었죠. 그러다 보니 당시 원장님 한 분과 군의관 2명, 내과 레지던트 1명이 모두 달려들어 수술에 매달리고, 분만을 돕기도 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뿌듯했습니다. 의사가 이런 것이구나, 딱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일종의 사명감이 들이닥쳤지요. 다시 오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40년이 지나 다시 찾은 백령병원은요.
“그동안 백령적십자병원, 백령길병원으로 이름을 바꿔왔습니다. 어느덧 저도 70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돼 있었고요(웃음). 세월이 흘렀지만 한번도 백령도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의사로서의 동기 부여를 제공한 곳 아닙니까. 신축한 2014년부터는 30병상을 갖춘 어엿한 병원으로 거듭났고요. 그해 섬은 (65세 이상 노인이 20%가 넘는) 초고령화로 들어섰어요. 병원 상황은 여전히 힘듭니다. 저흰 내과·정형외과가 없습니다. 그러니 수술할 요건이 안 됩니다. 대신 성형외과·흉부외과를 신설해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왜 내과·정형외과가 없나요.
“내과·정형외과는 인기 있는 필수 진료과목입니다. 이 과목의 전공의들은 군의관으로 1차 차출됩니다. 그 다음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인데, 이들도 인천 지역으로 희망 근무지를 쓰지 않습니다. 백령도로 올 확률이 높거든요.”
백령병원 전경. [중앙포토]

백령병원 전경. [중앙포토]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을 백령도와 백령병원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섬의 고령화는 가파르고, ‘돈 되는 인기 진료과’에 몰리면서 필수·응급의료와 지역의료 인력은 부족하다. 주민 김은균(76)씨는 “80대 노인이 경운기에서 떨어져서 1시간30분 걸려 소방헬기로 인하대병원에 도착했지만 그만 사망했다”며 “여기서 수술이 안 되니까 도시에서라면 살 것도 옮기다 죽는다”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 원장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씁쓸하다”고 했다. 그는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했다.

무슨 문제인가요.
“물리적인 한계입니다. 더 가깝게 돌봐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여기서 1차 방어선을 펼칩니다. 열악하지만, 최대한 말이지요.”

현재 백령병원에는 5개 진료과목에서 2명의 전문의와 7명의 공보의가 근무한다.

아내도 백령도서 만나, 부부가 봉사 다짐

병원 상황이 열악한데도 퇴임 후 백령병원을 자원했습니다.
“하루 병원을 찾는 환자 90여 명 중 제가 진료하는 마취통증의학과로 오시는 분만 40명 정도입니다. 그중 80%는 노인 환자고요. 의대 교수로 있을 때 한 주 두 번의 외래진료 중 찾아오는 환자 수와 맞먹습니다. 절실한 분들이죠. 제가 진료하는 과목이 필요한 거고요. 7개월간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자원 봉사자로 왔던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이 백령도이니, 부부가 함께 여기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원장의 아내는 장례지도사 자격을 갖고 있다. 이 원장과 함께 봉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백령도에 장례가 있는 날이면 이들 부부가 나서 미사를 주관하고 입관을 돕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인터뷰 도중 이 원장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펴보니 여느 진료실과 달리 의사와 환자를 가로막는 책상이 없었다.

작년 12월엔 산부인과 전문의 공백 메워

숫자로 보는 백령병원

숫자로 보는 백령병원

책상은 왜 옆으로 치웠나요.
“거리가 생기면 안 되지요. 가까운 사이가 돼야 합니다. 특히 백령도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이웃입니다. 가까울수록 진료 효과는 커집니다. 서로를 믿는 거죠.”

이 원장의 ‘이웃’ 중 절반은 군인이다. 이들은 근무지 발령을 받아 시한부로 섬에 있다. 젊은 군인들의 가족은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진료가 절실하다. 군인인 남편을 따라 백령도에 3년째 사는 이혜란(37)씨는 “아이들이 어려서 남편의 발령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병원 갈 일이 걱정됐는데 백령병원에 소아과가 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해 12월에는 오혜숙(74) 진료과장이 합류해 2년8개월간 이어진 산부인과 전문의 공백을 메웠다. 이씨는 “이제 든든하다”고 말했다.

육지 생활이 더 편하지 않으신가요.
“부임 후 1년 동안은 아예 육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집안 행사도 빠졌습니다. 그만한 각오 없이는 이곳에 오래 있긴 힘들 것 같아 스스로 결심을 세우고 이걸 지켜야만 내가 제대로 환자를 돌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지금은 육지에 나가면 오히려 불편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환자들 말입니다. 내가 환자를 치유한다는 것도 있지만, 환자를 보면서 스스로 치유되는 면이 더 큽니다.”
인기 진료과 쏠림이 있는데요.
“우리 둘째(안과 전문의)가 의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제가 얘기한 게 있어요. ‘돈을 벌고 싶으면 절대 의사는 하지 말라’고요. 의사는 부와 명예를 쌓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의학용어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의학을 연구하는 일을 임상(臨牀)이라고 하잖아요. 최대한 환자 가까이에 있는 것. 그게 의사가 할 일이에요. 백령도가 비록 육지에선 멀지만, 의사와는 가까운 동네가 되도록 여생을 바칠 겁니다.”
언젠가 물러나실 텐데, 누가 이 원장님의 자리를 대신할까요.
“정형외과 후배가 개인병원을 접고 내달부터 합류하기로 했어요. 아무리 급여가 많아도 본인이 여기서 보람을 찾지 못하면 1년을 버티기 힘들어요. 100세 시대 아닙니까. 시니어 의사들이 힘을 보태주길 바랍니다.”

하루종일 이어진 진료는 오후 5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퇴근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1분 거리 관사로 향하는 길,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1분 대기조’를 자처한 이유를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는 환자 옆에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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