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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는 일본 관광객, 엔저만은 아닌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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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도쿄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씩은 가는 대표 명소, 아사쿠사(浅草)에선 요즘 새 여행이 뜨고 있다. 우리 말로 치자면 ‘뻥 관광’이다. 가이드가 아사쿠사 곳곳을 안내해주는 90분에 2800엔(약 2만5000원)짜리 여행 상품인데, 재밌는 건 자기소개부터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라는 거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교차로 앞에 서서 가이드가 말한다. “에도시대엔 모든 길이 아사쿠사로 이어져 87차로였어요. 올 때마다 길이 새롭게 만들어져서 헤매기 쉬워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당초 이 여행은 만우절을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이 새빨간 거짓말 투어가 큰 웃음을 주면서 7월 예약까지 1100명이 줄을 섰다.

지난 2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일본 아사쿠사. [EPA=연합뉴스]

지난 2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일본 아사쿠사. [EPA=연합뉴스]

일본 여행이 제대로 봄을 맞았다. 가는 곳마다 관광객이 넘쳐난다. 일본 정부 관광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2500만명 넘는 해외 관광객이 일본을 찾았다. 올 1월에도 268만명이 왔는데, 이 추세라면 3100만명을 넘긴 코로나 이전 수준(2019년)으로 회복 가능하단 전망마저 나온다. 엔저라서 그렇다는데, 정말 그것뿐일까.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관광산업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고, 가본 사람들에겐 다시 가고 싶다는 꿈을 파는 산업”인데 최근 일본의 관광 붐이 여기에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요즘 도쿄도청은 매일 밤 도쿄도청사를 영상으로 수놓고 있다. 세금 들어간 커다란 도청사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30년에 걸친 재개발 끝에 지난해 말 문을 연 아자부다이힐스는 도쿄의 새 명소로 입소문 나며 관광객을 흡입 중이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 볼거리에 손님들이 밀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도쿄의 부엌’으로 불리는 츠키지(築地) 시장에선 일본산 최고급 소고기 스테이크 꼬치 하나에 5000엔(약 4만5000원)이나 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지갑을 여는 외국인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최근 도요스(豊洲)에 문을 연 관광지 센캬쿠반라이(千客万来)에선 사람들이 한 알에 600엔 하는 딸기를 선뜻 산다. 고토히메(古都姫)란 이름이 붙은 나라(奈良)현 딸기로 젊은 농업인이 지난 2021년 야심차게 만들어낸 신품종이다.

관광 공해란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관광객이 가져온 온기는 지방 소도시로 퍼지는 중이다. 유명 관광지마다 북새통을 이루다 보니 “관광객이 덜 찾는 곳을 가보자”는 사람들마저 늘어나 지방 경제에도 숨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관광 흥행기를 그저 넋 놓고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